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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3. 잔인한 4월.(제주 4.3사건)

hello :-) 2024. 4. 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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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하면 늘 붙는 단어가 있다. 바로 잔인한 달이라는 말.. 유독 4월은 역사적으로 큰 사건들이 많다. 그중에 최근에 자세하게 알게 된 사건 중에 하나가 바로 제주 4.3 사건이다. 언론에서 건조하게 4월 3일만 되면 떠들지만 제주도에 친구나 친척이 있지 않은 이상 자세하게 알기가 쉽지 않다. 학창 시절에도 건조하게 배우는 게 다였다. 

 2월달에 다 읽었지만 차마 포스팅하기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책이 있다. 

 사실 제주도는 학창시절 궂은 날씨에 수학여행으로 2박 3일을 간 게 전부인 데다가 TV를 통해 드라마로 접한 게 전부였다. 이 책도 어찌 보면 처음에 내 의지로 읽은 것은 아니었다. 블로그 이웃분에 한 분이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하여 마침 전자책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나로서는 신간에 포함되어 있길래 오디오북으로 듣기 시작했다. 

 제주도를 열두달동안 알아가는 구성이다. 1월부터 12월까지인데 문화, 역사, 풍습, 문화 두루두루 제주도에 대해서 다룬다. 특히 작가님이 제주도에서 태어나서 스무 살에 육지로 나와서 생활하셨다는 부분에서 더 몰입해서 읽게 되었다. 

 학창시절 유난히 국사와 근현대사를 좋아했던 나로서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라고만 알고 있었다. 참 건조하게도 훑고 지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극악무도하다는 일제 강점기 무단통치아래에서 3.1운동은 전국에서 200만 명이 참가하고 무려 희생자로는 750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제주에서 벌어진 학살극의 희생자수와 이재민의 숫자는 이를 훨씬 초월하고 당시 제주 인구의 10%가 죽었고 30%가 터전을 잃었다고 한다. 당시 학살장소로는 절벽, 폭포, 계곡, 바닷가나 움푹한 웅덩이가 많다고 한다. 시체가 쌓여도 치우지 않아도 되고 바닷가에 버려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 시기 제주사람들은 갈치를 먹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 정도도로 처참했다. 

 4.3사건의 시초가 되었던 1947년 3월 1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라는 물음으로 시작된다. 일제는 패망했고, 자주적인 독립 정부가 수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제주사람들은 우리 힘으로 주권을 행사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자며 3.1절 기념식에 모였다고 한다. 제주섬이 생긴 이래 최대인파가 모였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인구 30만 명의 섬에 제주읍과 부근 두 개 면 사람들 3만 명이 걸어 제주 북국민학교로 모이고, 나머지 여덟 개의 면에서 자기들 지역에 모여 집회를 열어 통합 5만에서 6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당시 어수선한 분위기로 테러와 시위가 분분하던 어수선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제주도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1629년부터 무려 200년간 출륙 금지령으로 언어와 문화가 고립되고 경제가 단순해졌다. 같은 마을사람들 간에 빈부격차가 거의 없고, 대부분 비슷한 일을 했다. 거의 친인척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보니 생각도 비슷비슷했다. 조선시대부터 진상품을 강요당하고, 일제의 수탈을 겪으며 제주사람들은 '외지인 간섭 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평등한 공동체'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군정의 입장에서는 주권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미국을 배제한 국가 건설로 받아들여져 당시 냉전시대임을 생각하면 미국편이 아니면 소련 편이라는 흑백논리에 의해 제주를 좌익으로 적으로 생각하여 억압하려고 한 이유다. 그리하여 1947년 3월 1일 집회로 인해 육지에서 온 경찰로 인해 여섯명의 제주사람이 총에 맞아 죽게 된다. 이 총에 맞아 죽게 된 사유도 기마경찰의 말이 말부리에 돌이 차여 그 돌에 아이가 다쳐 군중이 항의를 했더니 겁먹은 경찰이 총을 쏜 것이었던 것. 제주도의 특수성. 즉 도둑도 거지도 대문도 없는 제주도의 특성을 알았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당시 육지에서 온 경찰은 제주도로 온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아 제주의 상황을 몰랐을뿐더러, 10월 항쟁의 한 복판에 있던 사람들이다.(10월 항쟁은 친일파에 의존하는 미군항정이 미국식 자유주의를 도입한다며 쌀값을 자유화했다가 쌀값이 치솟아 대구에서 항의하는 군중에 경찰이 총을 쏘면서 전국으로 확대된 사건을 말한다.) 

 이때, 제주도의 사람들은 경찰을 믿었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리라는 생각에 해산했으나 미군정 조병옥 경무부장이 '제주 사람들이 소련의 사주를 받아 폭동을 일으켜 이에 정당방위다'라고 발표해버린다. 제주사람들은 억울하여 총파업을 했으나 미군정은 오히려 제주를 반군들의 소굴로 인식하고 대응하기 시작한다. 동서 냉전의 시작가 함께 첫 번째 본보기를 보여주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미군정은 제주의 도지사, 도청간부, 학교 교사, 경찰간부 모두를 싹 다 외지사람으로 바꿨다. 피난온 이북 사람들이 이 자리를 대체하면서 제주사람과 외지인의 갈등을 좌우익의 충돌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제주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항의를 하다 보니 경찰 인력이 부족하게 되었고, 육지에서 경찰을 보내면 월급을 줘야 하니까 미군정은 서북청년단을 경찰의 보조 조직으로 삼는 것으로 해결하여 버렸다. 정식 경찰이 아니니 월급을 줄 필요가 없었고, 서북청년단의 약탈행위를 묵인하였다. 그러다 보니 서북청년단이 제주사람을 잡아서 구타하고 고문하였고 제주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시민 저항운동을 하게 되었다. 

 1948년이 되자 더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갔다.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을 하기 위해 단독 선거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제주사람들은 제3차 대전이 어쩌면 한반도에서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주독립 국가 건설이라는 생각을 통일 국가 수립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미군정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사람들을 단독 선거를 하게끔 압박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제주에서는 검거와 고문으로 응하게 되고 그러다 조천 학생 김용철과 모슬포 청년 양은하가 고무로 사망하게 된다. 앉아서 죽거나, 일어나 싸우거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제주의 급진적인 청년들은 싸우기를 선택했고, 그리하여 1948년 4월 3일에 봉기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4.3 사건의 시작은 미군정시기였지만 대학살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였으니, 제헌 헌법이 수립된 이후이다. 놀랍게도 헌법에 명시된 '인간의 존엄한 권리'가 어떤 이유로도 침해될 수 없다는 것을 문자화한 것인데 개인은 재판을 받을 권리와 변호사로부터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의미하지만 1948년 대한민국 제주사람들은 재판 없이 처형당했다. 그리고 학살에서 살아남아 재판에 넘겨진 사람에 대한 절차 역시 법률을 따르지 않았다. 어떻게 대한민국 군인이 국민을 향해 초토화 작전을 할 수 있다는 말인지.. 무장대와 내통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피난처를 구해주지 않으며 삶의 터전을 불태워 없애고, 젊다는 이유로 처형하고, 젖먹이는 나중에 커서 복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죽이고, 무서워서 숨었다고 처형하였다. 헌법을 위반한 것은 국가였고, 그리하여 훗날 정부는 국가 폭력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대통령은 사과를 했다. 수형인들에게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했다. 

 1954년 공식적으로 제주 4.3은 종결되었지만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젊은 남자들이 학살당하면서 많은 여인들은 남편과 자식을 잃었다. 순식간에 성비는 56대 100으로 떨어졌다. 폐허 위에서 여인들은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었지만 다시 시작했다. 어떻게 버텨내었는가 라는 질문에 살다 보니 살아졌다고 한다. 그 모진 세월을 견뎌냈다. 어느 마을은 심지어 피해와 가해자가 함께 살아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었지만, 이들은 복수 대신 인내를 선택했다. 증언을 모으고, 기록을 모으고, 수집하여 드디어 정부로부터 국가 폭력임을 인정받았다.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낸 것은 세계 유례없는 일이라고 한다. 

제주도의 상징 동백

  • 사실 이 책을 읽은 지는 한참 되었지만, 저 책을 책장 카테고리가 아니라 이곳에 포스팅하는 이유는 저 책의 12가지 얼굴 중에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잊히지 않는 책이고, 기억하고 싶기도 하고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아무래도 제주도의 특성상 삼국시대 이전부터 현재까지 차별의 땅이다 보니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에 중앙의 역사(삼국시대에 제외된 탐라국부터 삼별초의 수탈, 조선시대에는 섬밖으로 못 나오게 하고 등등)에서 배척되다 보니 더 악착같이 살아남고자 한 정신이 느껴져서 참 제주도 사람들의 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그럼 또 이렇게 이야기하겠지.. 살아보니 살아지더라는... 현재도 앞집 옆집 동네 모두가 같은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 아.. 참고로 이승만정부 때 일어난 사건이다. 민간인을 학살하고 독립운동자금에 손댄 사람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참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 제주 4.3 사건이 더 슬펐던 게 이승만 대통령 재임시절에는 언급도 못하다가 1960년 4.19 혁명 때 비로소 논의가 나오다가 5.16 쿠데타로 다시 중단되었다. 완전히 잊혀서 묻힐뻔하다가 현기영 작가님의 <<순이 삼촌>>이라는 소설에서 제주 4.3의 진상과 상처의 일부를 사실적으로 드러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작가는 제주 4.3을 소재로 소설 썼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이후 1987년 4.3일 제주대학교 총학생회에서는 첫 위령제를 지냈다고 한다. 1989년 시민단체에서 추모제를 봉행했다.(공개 첫 행사)

▼함께 읽었던 책

 

 

혐오와 왜곡, 감정싸움 없이 한국사를 이야기 하는 법-심용환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드라마틱하다. 처음에는 드라마 '연인'관련 영상을 보다가 심용환 교수님의 영상이 올라온 것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배경인 책장에 눈길이 갔는데 표지가

hello88763.tistory.com

출처 : 신비의 섬 제주유산에서 일정 부분 타이핑함.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요즘 자주 하게 된다. 
  • 관련 영화도 있지만.. 차마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점점 겁이 늘어서 감정적 소비가 힘들어서 피하게 된다. 
  • 관련영화 : 지슬, 수프와 이데올로기
 
신비 섬 제주 유산
가도 가도 질리지 않는 매력적인 섬 제주! 매년 제주로 떠나는 제주도 광팬들을 위한 책 《신비 섬 제주 유산》이 출간되었다.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제주의 2천 년 역사, 문화, 자연을 속속들이 담아낸 제주 이해 완결판으로, 한라산, 오름, 감귤, 해녀, 화산섬 등 제주에 대해 단편적으로 아는 것은 많지만 그보다 더 깊이 있는 지식에 목말랐던 사람들을 위한 선물 같은 책이다. 유네스코 자연과학 부문 3관왕을 차지하고 세계적인 여행지로 부상하며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해진 제주. 하지만 한국인이라 해도 제주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주의 탐라국은 신라보다 170년이나 더 독립국으로 살아남은 나라였고, 제주는 무려 100여 년간 실질적으로 몽골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운동이자 항일운동으로 제주 해녀항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제주의 수월봉이 ‘세계 화산학의 교과서’로 불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살아가는 반(半) 제주인 고진숙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2천 년 제주의 시간을 한 권에 담아냄으로써 제주인과 비제주인을 통역하고 연결하는 유의미한 시도를 선보인다. 1년 52주 동안 매주 색다른 제주의 역사, 문화,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책 《신비 섬 제주 유산》. 이 책과 함께 습지의 날이 있는 2월에는 제주 람사르 습지로, 메밀꽃 피는 5월에는 메밀이 바꾼 제주 밥상 이야기로, 해녀항쟁이 있던 12월에는 역사 무대인 세화오일장으로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천년 제주가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고진숙
출판
블랙피쉬
출판일
202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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