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NS를 하다가 한 사진을 발견했었다.
위의 사진이었다. 오래전부터 2월 14일이 되면 회자되는 말 중에 하나가 밸런타인데이보다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을 몰라서야 되겠느냐라는 글이 돌아다니곤 했었다. 잘못된 정보이다.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일을 받은 날짜인 것이지 순국한 날짜는 아닌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형선고일은 챙기면서 순국일은 잘 모르는 게 아마 우리나라 국민의 태반이 아닐까..(알고 계셨다면 당신은 참된 애국자이자 지식인이니 박수 다섯 번 쳐드립니다.)
안중근 의사를 아주 어렸을때 잠깐 위인전을 보면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독립운동가라고만 알고 있었다. 사실 가장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이지만 그만큼 잘 모르고 단편적인 부분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사와 근현대사를 좋아한다고 자부하지만 나 역시도 흐릿하게 기억하는 것이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조선후기 정조대왕의 승하를 기점으로 세도정치가 판을 치면서 국운이 몰락하며 혼동의 극치인 기점으로 들어가면서 헷갈리기 십상이다 보니 큰 줄기만 기억하고 다시 들여다보기에는 아픈 역사라고 외면했던 게 사실이다.
안중근 의사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가슴과 배에 7개의 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에 응하여 태어났다 하여 어릴때 이름이 응칠이었다.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안태훈이며 할아버지가 진해 현감으로 지냈으며 미곡상을 하여 집안은 부유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으나 말타기와 사냥에 능해 명사수로 알려졌다고 한다. 동학운동이 일어나 아버지 안태훈이 독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가담하고, 1895년 아버지를 따라 가콜릭에 입교하여 프랑스어를 배웠으며 토마스(한국식으로는 도마)라는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도마 안중근 의사라고 한다)
1904년 을사 늑약이 체결되자 운영하던 상점을 팔아 1906년 삼흥학교를 세우고 돈의 학교를 인수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1907년에는 아예 연해주로 가서 의병활동에 참가하였다. 이후 전제덕의 휘하에서 엄인섭과 함께 100명의 부하를 이끌도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침투해서 일본군과 싸웠으나 패하여 후퇴하였다. 이후 노에프스키의 대동공보의 탐방원으로 활약하여 애국사상을 고취시키기도 한다. 이후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 나라를 위한 투쟁을 벌일 것을 맹세하여 동의단지회를 결성한다. 그해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하얼빈에 러시아 재무상과 회담하기 위해 방문한다는 소식에 죽이기로 결심하고 1909년 10월 26일 일본으로 위장해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역 플랫폼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궁내대신 비서관, 만철이사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된다. 이후 관헌에게 넘겨져 중국 뤼순 형무소에 수감된다. 다음해 2월 14일 재판으로 사형이 선고되어 3월 26일 형이 집행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일생을 다룬 작품들이 뮤지컬도 있고 영화도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스토리 전개로 인해 조금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라 앞으로 개봉할 영화인 하얼빈이 기대가 된다.
많은 배우분들이 출연한다고 하는데 일단 감독님이 남산의 부장들을 연출한 분이라서 기대가 크다.
아픈 역사지만 잊혀지면 안 되고, 왜곡되어서도 안 되는 숭고한 희생이 담긴 순간을 담아낼 영화라서 기대가 큰데 아직 예고편도 개봉일자도 정확히 나온 게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빨리 왔으면 좋겠지만 또 천천히 알차게 왔으면 하는 바람도 드는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이후 안중근 의사의 서거후 그의 가족은 험난한 사건(조국을 위해서 독립운동을 한 안중근 의사는 위대하지만 한 아버지로서의 안중근으로 인해 장남 안분도는 모르는 사람이 준 과자를 먹고 어린 나이에 사망하게 된다.)을 겪는다.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이 겪는 갖은 고생을 겪게 된다. 이후 일제 고위관료의 제안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박문사라는 절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죽인 나라의 원수에게 사과를 한다. 오죽하면 김구선생은 나라가 해방되면 먼저 죽일 놈이라고 이야기한다. 이후 어찌 되었든 안중근의 차남 안준생은 남들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결혼하고 자녀도 낳은 후 약국 개업을 하여 부유하게 산다. 1945년 해방되고 중국 공산당을 피해 가족들을 미국으로 보낸다. 이후 한참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1951년 폐결핵으로 사망하게 되는 도마 안중근의 차남인 안준생의 일생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현재도 부유하고 기득권으로 살고 있는 친일파와 기본적인 지원도 받지 못하는 독립유공자들의 삶이 떠올라서 선뜻 손가락질하기에는 과연 나라면 정말 안중근 의사처럼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안중근의 아들이 이야기했다고 전해진 "아버지는 영웅이었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영웅처럼 살 수 없고, 그렇게 살 수 없다."라는 말이 계속 모래알갱이처럼 마음속에 까끌거리게 남는다.)
★ 물론 그래서 안중근 의사의 뜨거운 애국심과 숭고한 희생이 더 존경스럽고 더 숙연하게 와닿는다.
출저 : 안중근 위키백과 / 안준생 위키백과 / 영화 하얼빈 소개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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