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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s 22 - 23 책장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hello :-) 2023. 12. 4.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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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은 사실 처음 읽은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읽는데 최근에 읽었던 책 '아직 이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책을 읽고서 문득 드는 생각 하나 때문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이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릅니다-김설

요즘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보니 책 소개말에 자살 사별자의 이야기라는 말에 읽게 되었다. 죽음은 누구나 만나기 마련이다. 나의 죽음을 비롯하여 가족의 죽음이나 친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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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 모든 경험은 다 해볼수 있지만 죽음만큼은 경험해 볼 수 없다. 죽고서 다시 지금의 나로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이 책이 에세이 형태일 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 터라 처음 2~4장까지 읽는 게 많이 버거웠다. 몰랐는데 저자가 철학과 교수님이셨기 때문... 굉장히 철학적으로 파고들어서 처음에는 책을 보는 건지 조는 건지 모를 정도로 진행이 더뎠다. 중반부에는 오기로 읽었고, 후반부에 가서야 조금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 죽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와 같은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혼이란 게 정말 존재하는가?"
  • 죽음이 정말 나쁜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앞서 우리는 죽음의 본질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죽음이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생각해봐야 한다.)
  • 특정한 상황에 대해서는 자살도 이성적,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나는 죽음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견해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잘못됐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것이야 말로 이책을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 개인적 정체성 : 시간에 관한 인간의 정체성 문제, 다시 말해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같은 존재라고 말할수 있는 근거
이원론 일원론
인간은 육체 그리고 전혀 다른 정신의 조합. 즉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주장.  인간은 한가지 기본 요소로만 이뤄져 있다. 즉 육체만이 존재한다는 주장.
 1.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다.
2. 결정론에 지배를 받는 존재는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다. 
3. 순수하게 물리적인 존재는 결정론의지배를 받는다.
4. 그러무로 인간은 순수하게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물리주의라고도 부른다.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 어딘가 영혼이 함께 머무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육체에 불과하며, 특정한 형태의 물질적 존재라고 설명하기 때문.(그렇다고 그냥 뼈와 살로 이뤄진 덩어리라는 의미는 아님)
  • 물리주의자들은 인간을 다양한 기능가 여러 가지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육체로 설명한다. 인간은 사고하고, 의사소통하고, 판단하고, 계획을 세우고, 감정을 느끼고,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사랑하고, 꿈을 꾸는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육체다. 
  • 물리주의자의 견해 :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하고, 의사소통하고, 계획하고, 고민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시를 쓰고, 사랑에 빠지는 육체적 기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도구적 용어다. 우리는 정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신이 육체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정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님) 뇌 ≠정신
  • 물리주의 관점에서 죽음은 고장이 나서 완전히 망가지면 우리의 육체는 더이상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 어떤 주장도 영혼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충분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영혼이 없다고 믿는다)
  • 영혼의 존재를 믿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혼과 같은 비물질적인 존재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비물질적인 존재를 가정하는 거은 과학, 특히 물리학 법칙을 어기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 : 중복 및 연속성의 패턴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잇다면 끊임없이 진화하는 하나의 동일한 인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기억이 등장하고 과거의 기억이 사라진다. 새로운 목표가 나타나고 기존의 목표가 사라진다. 새로운 믿음이 등장하면서 과거의 믿음이 사라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믿음, 욕망, 목표는 거의 없다. 그래도 올바른 형태의 중복 및 연속의 패턴이 이어지는 한, 우리는 동일한 인격을 유지할 수 있다. 인격 관점에 따를때 인격이 같다면 동일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 내가 죽은 다음에 대게 중요한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만한 근거는 아직 없다. 
  • 내가 죽고나서 내 몸이 부활하거나 내 인격이 이식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이 나의 진정한 종말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나의 끝이자 내 인격의 끝이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다. 죽음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끝이다. 

 

  • 믿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 있다고 해서, 내면으로부터 죽은 상태를 그려볼 수 없다고 해서,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이 죽은 상태를 얼마든지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믿을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 자신이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굳이 왜 유서를 쓰겠는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유서를 쓰거나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우리 모두 언젠가 죽을 거라고 쉽게 말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사실 우리는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 모든 사람이 홀로 죽는다고 말할때 우리는 죽음에 대한 특별한 진실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기대하게 된다. 물론 사람들이 모든 일을 홀로 한다면, 이 주장 역시 흥미롭고 중요하며 심오한 성찰을 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음에 대해 특별히 흥미로운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인간 모두 점심을 홀로 먹는다는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거기서 죽음에 대한 의미 있고 고유한 발견을 이끌어 낼 수는 없다. 
  • 어느 누구도 우리 대신 죽을 수 없다. 죽음에서 만큼은 어느 누구도 우리의 역할을 빼앗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는 주장의 진정한 의미는 아니다. 
  • 누군가가 죽어간다고 상상한다면 객관적으로 그는 혼자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독감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지독하게 외롭다. 이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는 진정한 의미는 아마도 이런 외로움일지도 모른다. 

 

  • 죽음이 나쁜 이유는 죽고나면 삶이 가져다주는 모든 축복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어서다. 살아 있을 때 삶이 가져다주는 선물을 하나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은 우리에게 나쁜 것이다. 이것 말고는 죽음을 나쁘게 생각하는 어떤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 펼쳐질 삶이 전체적으로 좋은 것일때만 죽음은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생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한다.) 만약 앞으로의 삶이 오직 고통스럽기만 한다면 죽음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을 끝내는 좋은 것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박탈 이론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죽음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전에 삶이 어떤 것을 주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이론적으로 볼 때 박탈 이론을 수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영생을 좋을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 
  • 우리는 영생을 보다 즐겁고 가치있는 삶으로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중요한 점은 영원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을 다 한다고 해도 영원한 삶 속에서는 순간일 뿐이다. 
  • 인간은 어떤 경험을 하면서 동시에 그 경험에 대해 끊임없이 반추한다. 
  • 인간의 죽을 운명이 아무리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해도 죽음은 우리에게 언제나 너무 일찍 찾아온다. 삶이 나쁜 것으로 전환되기 한참 전 죽음은 우리를 찾아온다. 앞으로 10년, 20년 아니면 500년 일지라도 행복한 삶이 이어질 거라고 기대하는 순간 죽음은 느닷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즉, 영생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과 죽음은 항상 너무 일찍 찾아온다는 생각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 내게 주어진 시간을 알게 된다면 정말로 원하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될까?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할때, 이는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질문이다. 죽음에 관한 예측 불가능성은 죽음을 더 나쁜 것으로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더 좋은 것으로 만들고 있는가?
  • 좋은 것을 더 많이 누릴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누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운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우리가 가져야할 바람직한 감정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분노도 아니다. 대신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일 뿐이다. 
  • 영생을 누리지 못한다고 해도 60년, 80년, 100년을 살고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우리는 20살, 30살, 50살에 새 출발의 기회를 잡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봉쇄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쨌든 죽음이 누구에게나 빨리 찾아온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신중하게 살아야 한다. 
  • 인생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시간은 매우 짧고 귀하다.
  • 우리가 신중하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죽을 운명이기 때문은 아니다. 도전해야 할 목표가 너무 많은데, 그 모든 것을 이루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에 직면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에 우리 인생을 가능한 많은 것들로 채워 넣어야 한다. 할수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축복을 누려야 한다. 
  • 인생에서 자신이 뭔가를 얻었다는 확실한 성취감을 위해 일상적인 목표들도 적절한 비율로 추구해야 한다. 
  • 삶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단지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집어넣었는지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그 삶에서 이룩한 성취가 얼마나 높은 곳까지 이르렀는지 확인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해 양보다 질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삶이 죽음보다 더 나빠지는 기간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자살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현재의 삶이 기대만큼 가치가 높지 않다고 해도, 죽는 것보다는 얼마든지 더 나은 인생일 수 있기 때문.
  • 가치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라면, 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물론 자살을 선택한다면 회복 가능성을 영원히 포기하는 셈이다. 이는 당연히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동시에 회복가능성 그리고 자살하지 않았을 때 겪어야 할 고통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해볼 필요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자신의 상황을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가정할때, 자살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는 사례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관한 생각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죽음은 별로 유쾌한 주제가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마음속에서 몰아내고자 노력한다. 죽음에 직면할 때조차도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 영생의 삶을 이야기 할때 문득.. 드라마 도깨비의 김신이 생각이 났었다. 무려 900년 살아온 도깨비였지만 인간인 도깨비 신부의 죽음 이후에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었다. 드라마에서 영생의 삶을 살지만 자신의 주변에서는 죽음과 삶이 반복되고 반복되다 보니 무뎌지기도 하면서도 자신의 가슴에 박혀있는 칼을 뽑으며 무의 존재로 돌아간다고 할 때 심란해하던 도깨비가 문득 생각이 났었다. 900년을 살아도 삶에 미련이 생기기 마련인가 보다라고 했었는데.. 

 

  • 누군가의 죽음이 더 값지고,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 평가하는게 과연 옳은 건가 라는 생각을 최근에 하곤 했었다. 사실 옳지 않은 잣대인 것이 분명함에도 우리는 함부로 말하곤 한다. 정말 객관적이지만 죽음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물론.. 주장 A를 언급하고 A의 이유가 서술되다가 반박하는 주장 B가 주장하고, 과연 B가 맞을까 하는 예시가 나오고 A와 B도 아니고 C다 라면서 언급이 되어서 잠시 정신줄을 놓으면 꿈속에 빠지기도 하고 이 사람의 논점이 뭐였지?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는데 굉장히 논리적인 글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강의록을 책으로 옮긴 것이라고 하는 것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을 정도...
  • 자살의 한 부분인 안락사에 대해서 후반부에 잠깐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자살이 옳지 못하지만 정말 회복의 가능성이 없을때 사는 게 고통인 사람들에게 과연 옳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말기암 환자나, 희귀병 환자인 경우 더 이상 치료에 의미가 없는 경우에 생각해 보는 것 역시 과연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싶다. 점차 우리나라도 노령 인구가 많아지는데 중증 치매환자나, 말기암 환자가 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가끔 생각한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회복의 여지가 없다면 무조건 죽음은 나쁜 것이다는 잣대보다는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여 자신의 죽음도 선택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많은 관점의 차이는 있을 거라고 본다. 

 

  • 몇 달 전 과거 죽음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내일 혹은 며칠 후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주제의 글이었던 거 같다. 그 당시 반응이 신기했었다. 젊은 층의 경우에는 지금처럼 어렇게는 안 살겠지.. 좀 더 열심히 살지 않을까 했었고, 나이가 있는 층의 경우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이야기하느냐고 질색팔색했던 게 생각난다. 그만큼 죽음이라는 이야기는 금기어가 되어 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책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의사가 쓴 죽음에 관한 책이었는데 아마도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하는 분이었는데 말기암환자가 배에 복수가 찼는데도 불구하고 연명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고 퇴원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야기하여 의사가 진행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도 극도로 거부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항생제 투여가 반복되어 많은 비용의 의료비가 나와서 안타까웠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유한한 삶을 사는데 마치 무한한 삶을 사는 듯이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 역시도... 
 
죽음이란 무엇인가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DEATH'『죽음이란 무엇인가』. 종교적 믿음과 심리 현상 등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논리와 이성의 측면에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고찰한 책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로 불리는 셸리 케이건 교수는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토크쇼의 사회자처럼 특유의 유머감각과 입담으로 흥미롭게 풀어낸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방대한 철학사를 다루면서도 어려운 철학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대중철학 강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죽음 이후의 삶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강의는 죽는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나는 무엇이며 어떤 존재인지,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지, 자살은 누구에게 어떤 순간 허락되는지 풀릴 듯 풀리지 않았던 과제들을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더불어 삶의 가치와 죽음에 대하여 다양한 사례와 소설 등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을 이야기 하는 이 책은 죽음의 본질을 이해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
셸리 케이건
출판
엘도라도
출판일
201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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