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순간이자 지우고 싶은 사람은 내 첫 남자친구다.
따지고 보면 지금 내가 전공을 살려서 요리사로 살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어준 사람이지만 인간은 개차반이라서 지우고 싶다. 같은 학과 선배였다. 지금이나 그때나 돌이켜보니 찌질한 놈인데.. 되도 않게 내가 가부장적인 스타일이라 지가 뭔데 내가 전공 살려서 요리 쪽으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 생각을 깨부수어 주겠다고 200인분 직원 식당에 단기 헬퍼로 일하라고 알바자리를 나에게 소개를 했었다. 본인이 원했던 반응은 "오빠 너무 힘들어.. 나 이 일은 나랑 안 맞는 거 같아.."라는 반응을 원했었나 보다. 니미럴.. 하지만 나의 반응은 "오.. 허리 아프고 힘들었는데 재미있었어. 앉아서 종일 감자 세 박스랑 양파 10kg까지 세망 까고 하루 종일 설거지 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어.. "라는 반응이었다. 자기 딴에는 존심이 상했는지 같은 건물에 돈가스 전문점에 점심시간 주방보조 일자리를 또 나에게 소개를 시켜줬었다. 그전에는 내가 과연 주방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근심과 걱정이 있었다. 일을 하면서 웬만한 업장에는 매뉴얼이라는 게 존재하고 일반인(?)은 모르지만 주방 내에 체계가 있고 배우고자 하면 알려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본인의 뜻대로 일이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않아서인지 그 뒤 본색을 드러내곤 했었다.

술만 먹으면 아무하고나 시비가 걸려서 싸우기도 하고, 조리과 특성상 동기들이 남자동기도 있는데 전화상으로 남자목소리가 들리면 온갖 별 지랄을 떨어서 똑같이 퍼부었더니 기가 세네 어쩌네 하며 요즘 말로 가스라이팅을 행하곤 했었다. 여자가 조신해야 한다는 둥, 그러면 누가 너랑 사귀어 주느냐는 둥 별소리를 다하며 혼자 화내고 혼자 헤어지자고 징징거리곤 했었다. 이미 오만정이 다 떨어졌지만 시간을 갖자며 거리를 두고 본인은 취직을 했고 난 중간고사 기간이라 학교에서 노숙하며 시험공부를 하곤 했었다. 더 정 떨어지게 기말고사 때까지 매일 술 처먹고 전화와 서는 헤어져 달라고 곡을 하는데 맨 정신에 이야기하자고 오조오억 번 이야기하다가 석 달만에 알았다. 잘살아라 하고 통화를 끊었다. 다음날 느낌이 싸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전화가 와서는 친한 척하길래 헤어진 사이에 전화하고 하하 호호 웃는 건 아닌 거 같다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뒤 찌질하게 내가 바람이 나서 헤어졌다는 식으로 학교 내에 소문을 내곤 했었는데 그 당시 나는 복수전공에 부전공까지 신청한 데다가 내가 듣고 싶은 대로 수업시간표를 짜서 듣느라 정말 혼자 밥 먹고 혼자 돌아다니며 수업 듣느라 같은 학과 친구라도 일주일에 한 번도 못 보는 경우도 다반사라 졸업 후에야 그 소문을 당사자인 내가 알게 된 게 코미디라면 코미디였다.
졸업후에 요리사로 일하다가 2교대 근무에 박봉으로 건강이 안 좋아져서 돈만 보고 콜센터에 일하다가 결국은 요리사로 다시 복귀해서 7년째 주 6일 근무하고 있으니 지우고 싶지만 지워지지 않는 더러운 과거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가 뭔데 내 인생을 지가 좌지우지 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웃기고 한결같이 남의 말을 안 듣는 나의 똥고집이 기특하다. 역시 사람은 변하면 안 되는 거..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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