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개천절 하면 단순하게 곰과 호랑이가 생각나고 마늘과 쑥이 생각난다. 어디서 봤는데 사실 마늘이라기보다는 달래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실제 마늘은 임진왜란 이후에 우리나라로 건너왔다고 하는데.. 그러기에는 이미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마늘을 아주 많이 먹는 것이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더불어 고추도 그렇지만.. 참 향신료를 좋아하고, 향신료라는 개념자체가 없기도 한 게 특이하다고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직관적인 첫 생각과는 다르게 떠오르는 생각은 홍익인간(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 이라는 정신을 전파했다고 생각되는 단군이 떠오른다. 사실 단군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우리로 따지면 제사장과 같은 명칭이라고 하는데 기록이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다 보니 정말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중국이나 일본이나 서로 고대역사를 지들이라고 한쪽에는 고구려도 중국이다라는 헛소리를 하고, 시멘트를 파묻어서 임나일본부설(광개토대왕비에서 임나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창원 부근으로 추측이 된다. 아마 가야를 말하는데 그 가야가 일본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한다. 백제의 문화가 일본에 전파되었다는 정론을 반박하고자 조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을 우기기도 했다. 이 정도면 단군할아버지 부동산 사기당하거 아니냐는 합리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포스팅 한줄 알았는데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영화 '박열'이 항상 10월쯤에 생각나는 건 아마도 '나는 조선의 개새끼로소이다'라는 멘트가 확 꽂혔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 10월 개봉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6월에 개봉을 했었다니.. -참고로 이 감과 개봉일자가 맞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데서 또 놀랐다..ㅎㅎ)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에 퍼진 괴소문 우물에 조센징이 독을 풀었다는 낭설로 인해 6천여명의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된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관심을 돌리고자 일본내각은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 운동을 하던 조선인 박열을 대역사건 배후로 지목한다. 일본의 계략을 눈치챈 박열은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일본 황태자 폭탄암살계획을 자백하고 사형선고를 받을 각오로 재판에 임한다. 조선인 최초 대역죄인, 말 안 듣는 조선인중 가장 말 안 듣는 조선인. 그 중심에는 박열이 있었다.

이 영화는 처음에는 감독님 덕에 보게 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개봉하고 한참뒤 집에서 보게되었는데 마침 채널을 돌리다가 감독 '이준익'이라는 화면에 누워있던 내가 앉아서 보게 되었는데 유독 감독님 영화를 많이 봤었다. 왕의 남자와 동주를 봤었는데 개인적으로 동주를 너무 인상 깊게 봐서 같이 출연하는 최희서 배우님도 출연한다고 해서 모처럼 영화를 집중해서 봤었다. (실제 영화를 잘 보진 않는다. 가만히 앉아서 보는 행위를 못 견뎌하게 된 거 같다. 극장처럼 강제로 다 같이 봐야 하는 분위기라면 모르겠지만 집에서 TV를 통해서 흘러나오면 보면서 괜히 핸드폰도 하고 오며 가며 화장실도 가고 물도 마시고 하면서 온전히 집중 못하는 나 자신이 못나보여서 더 안 보게 된다. 동주를 포함해서 이 영화를 통해 최희서 배우님이 진지하게 일본사람인가 했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신문을 통해서 박열의 시를 보고 시를 통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근본적인 궁금증을 갖게되고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동거서약까지 맺고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의 동지로 같이 살게 된다. '불령사'를 조직해서 항일운동을 이어나가고자 하지만 연이은 폭탄 제조 실패로 낙심하게 된다. 불령사 조직원과 회의 중 시비를 거는 일본인을 호되게 혼내는 후미코의 모습을 보고 박열도 후미코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그때 사망자 10만 명 이상, 이재민 20만 명 이상 백억 엔 이상 막대한 재산피해를 입은 관동지방 지진에 일본 국민들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라며 황궁 앞으로 몰려들게 되고 마땅한 대책이 없던 일본정부는 혹시나 모를 폭동이 일어나기 전 계엄령을 선포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수습이 안될 때에는 언론플레이 하면서 관심사를 역으로 돌리는 행동을 계속한다.

이런 하급 언론플레이로 조선인에 대한 경계를 장려하자 그 명분으로 시작된 일본 자경단의 무차별적인 조선인 학살이 시작되고 경찰의 타깃이 되어버린 불령사 회원들은 되려 경찰에 잡히는게 학살로 안전하다는 판단으로 박열을 비롯하여 모두 제 발로 자수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마침 대규모 학살에 대한 명분을 찾고 있던 미즈노(김인우)는 왜곡으로 구속된 조선인 중 조선인에겐 영웅, 일본인에게 원수로 내세울 한 명을 뽑으라고 지시한다. 마침 박열과 자신은 인볼이니지만 불령사 회원이라며 후미코는 자수하고 미즈노는 생각보다 일이 커지자 같이 잡혀온 불령사 회원인 중한과 가쓰오의 폭탄제조 자백을 토대로 거짓으로 조선인 비밀결사단이 장관 암살을 기도했다고 민중의 시선을 돌리려 한다. 치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던 박열은 오히려 황태자를 죽이려고 했다고 더 부풀려 거짓 진술을 한다. 박열의 최측근은 후미코마저 재조사받게 되고 그녀는 평등한 세상을 짓밟는 악마적 권력이 천황 일가라 생각했다고 범행동기라며 자수한다. 너무나 당당하고 불량하게 행동하는 두 사람을 보고 다테마스 검사는 두 사람의 유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다테마스 검사는 정신감정을 해보려 하고 박열은 단식과 함께 재판을 거부한다.
황태자를 죽이려 했다는 진술로만 봐도 대역죄라 박열은 대법원에 넘겨지게 되고 박열은 조선인의 긍지를 위해 절대 일본에 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지게 된다. 명백한 증거와 정황도 없이 사형이 확실한 대역죄를 인정하고 면회를 온 이석기자(권율)에 조선에서 화제가 될 수 있게 널리 알려줄 것을 부탁한다. 박열은 담당검사 다테마스에 재판을 거부하지 않는 조건으로 조선의 혼례예복과 후미코의 혼인 신고서를 받아주라 요구한다. 1926년 2월 26일 조선인 대표하여 법정에 선 박열과 후미코는 약속대로 당당하게 혼례예복을 입고 등장하여 엄숙해야 할 재판장 분위기가 웃음바다가 되어버린다. 당당히 조선말까지 하는 그들의 불량한 태도에 일본인들은 분노하지만 외신 기자들은 오히려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다. 이후 2차 공판에 나온 박열은 독립운동을 한 조선인이 받은 끔찍한 고문과 학살에 대해 이야기 하고 간토대지진에서 6천 명이 넘는 조선인들을 학살한 자경단과 군인들의 악행을 은폐하지 말고 자백을 받으라고 법정에 호소한다. 박열을 응원하는 일본인 지식인들도 박열의 면회를 오고, 1926년 3월 25일 비공개로 진행된 최종 공판에서 박열과 후미코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며칠뒤 일본 정부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박열은 22년 2개월을 복역 후 석방된다. 가네코 후미코는 1926년 7월 23일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이 포스팅을 위해서 검색하다가 의외로 가네코 후미코의 묘가 문경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실 옥중에 박열과 혼인한 것으로 되어 있기에 죽음 이후 유해를 수습해줄 사람이 없어 박열의 형이 나서서 수습했다고 한다. 짧은 인생이기도 하지만 처음 태어나 아버지와 어머니께 양육을 거부당하면서 무적자로 학교에 제때 다니지도 못하고, 1912년 청원군 부용면에 고모집에 들어가면서 7년간 할머니에게 학대당하면서 컸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왜 저렇게까지 박열과 함께하고자 하는 걸까 하는 의문점이 이제야 풀리는 느낌이다. 어디서나 소속감을 못 느끼던 사람이 자신의 신념대로 사는 사람을 만나 소속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게 아닐까 싶다.
나라를 잃은 국민들이 그것도 타국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떠한 차별을 겪었을지 생각만해도 먹먹해진다. 현재도 일본에서 재일교포로 살아가는데 많은 차별과 어려움을 겪어서 자신이 재일교포의 후손임을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고, 실제 범죄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글을 본 적이 있다. 오죽하면 불령사 회원들이 경찰서에 있는 게 더 안전하다 싶어 있지도 않은 죄를 자수하면서까지 경찰서에 있고자 했는지 납득이 가 마음이 복잡하다. 그만큼 생존이 힘들었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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