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밭 한가운데 나무가 서 있다고 생각해 보라. 토양이 거칠어 뿌리내리기 쉽지 않다. 돌밭 옆에는 부드럽고 비옥한 토양과 풀부한 물이 있는 아름다운 목초지 한가운데 떡갈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어떤 나무가 더 잘 자랄까?
정답은 두 나무 모두 잘 자란다는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나무는 자신의 땅에 적응하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거친 토양에 심긴 나무는 돌들을 피해 뿌리를 내리고 결국 생존에 필요한 지하수와 영양분이 있는 심층까지 도달할 것이다. 비옥한 땅에 자란 나무 역시 뿌리를 내리지만 이처럼 멀리까지 뻗어나가지는 않는다.
자신이 좀 더 비옥한 땅에 심어졌길 바라기 쉽다. 관리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비전과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자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야 하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처음 자리에서 성장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게 아니라면 옮겨 심지 마라. 모든 곤경은 결과적으로 뭔가를 배우고, 적응하고, 새로운 기술과 더 단단한 마음을 기를 기회가 된다. 새로운 밭을 갈기 전에 당신의 땅에서 할 수 있는 성장을 다 이루었는지 확인하라. 처음 그 자리에서 성장하라. 현재 상황을 어떻게 성장의 발판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사실 처음에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메가마트 내부에 있는 한 돈가스 집이었다. 그때 당시 내가 식당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니까 나의 바람을 꺾어보겠다고 구 남자 친구가 일부러 힘든 곳에 단기 알바로 일하게끔 한 것이었다. 사실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하고 싶지만 내가 체력이 좋지 못해서 버티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었다. 불과 3일이었지만 정말 힘들어서 입에서 단내가 진동을 할정도였지만 재미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주문서에 대한 존재를 알았다. 처음 일을 하면서 미친듯이 일이 많이 들어온다는 비유가 딱 이런거구나를 알게 되었다. 내가 일을 재미있어 하니까 요식업에 종사하는걸 싫어하던 구 남친이 메가마트에 직원 전용 식당에서 설 단기 아르바이트로 400명의 단체급식에 설거지하는 자리를 알아봐 줬었다. 그때 난 알았다. 내가 보통 미친 게 아니라는 걸.. 웬걸.. 정말 재미있었다. 비록 울면서 일했지만..(힘들어서 운 게 아니고 양파 큰 거 3망을 하루에 세 번 까야하는데 눈이 매워서 울었음 감자 한 박스씩도 깎았었다.) 책상 앞에서 얌전히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다. 비록 삭신이 쑤셨지만 뭔가 게임 미션을 달성해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를 통제하려고 하는 그놈이랑 헤어지고 본격적으로 요식업 쪽에서 일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후 정말로 직원으로서의 삶을 잠깐 살아본건 한 프랜차이즈점 커피숍에서였다. 지금은 잘 안 보이는 카페베네에서 근무했었는데 웬만한 음료는 물론, 와플, 허니브래드, 베이글을 비롯해서 빙수까지 모두 다 할 수 있는 직원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라테를 잘 만들었다. 8월에 일요일에는 제빙기(얼음 만드는 기계)가 빙수나 아이스 음료 판매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매장을 뛰쳐나가서 근처 마트에서 얼음을 공수해 와서는 혼자서 빙수를 거의 300만 원어치 팔기도 했었다. 지금 근무하는 매장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던 위치였는데 오픈런하는 손님이 많았었다. (맛있어서라기보다는 근처에 매장이 스타벅스와 내가 근무하던 커피숍 말고는 없었다.)
그때 일이 너무 힘들어서 지금 몸무게의 15kg가 빠졌었고 입사할 때는 3교대였는데 직원들이 다 도망가서 2교대 근무로 1년을 버텼었다. 그때 건강이 안 좋아져서 그만두고 콜센터로 이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건강이 너무 안좋아져서 뒤도 안 돌아보고 다른 직종으로 갔다. 거기서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건강보험료를 안 내겠다는 민원인과 탈퇴는 사망 말고는 없는 건강보험료의 체계에 내 생일날 첫 전화가 시발년인 게 너무 현타가 와서 결국 그만뒀었다. (참고로 내 잘못도 아니고 건강보험 공단직원의 잘못이었으나 전화번호도 알려주면 안 되고, 전화도 넘기면 안되고 욕받이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음) 한 달에 9번 시험을 치고 무조건 다 맞아야지 다 안 맞으면 오답노트에 눈치까지... 결국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레스토랑 직원으로 이직했으나 일머리가 없다고 나보다 어린 친구에게 엄청 혼나면서 다시 배웠었다.
그래도 악착같이 배우려고 하는 모습에서 짠해서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다던 한 살 어린 직속 사수에게 양파 잘 까는 법이나 동선 짧게 쉽게 일하는 방법 등 실질적인 것들을 배워서 지금 근무하는 곳에서 알차게 써먹고 있는 중이다. 한 번씩 생각해 본다. 내가 다른 직종으로 (넓게 보면 다 같은 서비스직종이지만) 가지 않고 진득하게 배웠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내가 만난 진상 4팀 팀장이나 민원인들을 안 만날 수 있어서 좋았겠지만 정말 누님누님 하면서 하나라도 알려주려고 매일 맛있는 점심저녁을 해줬던 직속 사수를 만나서 일 못하던 내가 일 잘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싶다.
원래 막내가 밥을 해야 하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맛있는 거 먹여서 기운을 나눠주고 싶었다고 한다. 역시 맛있는거 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 내가 퇴직하고 얼마 안 되어서 내가 근무하던 레스토랑은 망했지만.. 나를 가리키던 직속 사수와 대리님은 둘이서 동업해서 가게를 낸 걸로 알고 있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예 다른 거주지로 이사를 오면서 방문조자 못했다. 그런 따스운 사람들이 잘됐으면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두 사람을 나의 롤 모델로 삼았던 게 아닐까 싶다. (대리님은 나 해고당한 날 슬퍼하지 말라고 공짜 영화티켓도 주고 사수랑 대리님이랑 나랑 양고기에 술 한잔 마셨었다. 어디서든 잘 살 거라고 진심으로 응원해 주신 분..ㅠ 자기 관리의 끝판왕으로 부장님 피셜 새벽 5시까지 자기들끼리 술 마셔도 운동까지 하고 출근해서 전날 술마신 거 티도 안내는 사람이라고 한다. 맨날 막내였던 나랑 비슷한 시간에 출근하셨었다. 참고로 나는 한 시간 전에 출근했었는데.. )
항상 운동하고 책 보고 자신의 일을 어떻게든 해내는 모습에서 어떻게든 배우고 싶어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메모를 했었다. 농담으로 사수가 누님은 도대체 뭘 그렇게 적는 거요? 하고 보려고 했었지만.. 그때 적었던 메모들을 지금도 가끔 보면 쓸데없는 것들 투성이지만 그때 그 마음이 느껴져서 기특하고 지금이 오히려 그때보다 더 열심히 살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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