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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s 22 - 23 책장

사라지지 않는다-클라라 뒤퐁-모노

hello :-) 2023. 6.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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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에 이 책을 접한 건 아름다운 표지에 환경문제를 다룬 에세이라고 생각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는데 그냥 표지를 보고 택한 선택이었다. 내용은 다른 내용이었지만..
  • 첫 시작은 아이가 둘 있는 집안에 부적응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적응한 자를 찾아보니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 따위에 맞추어 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보다 더 정확한 단어는 없다.
  • 오렌지 꽃 냄새(맡아본 적이 없어 어떤 향인지 모르겠다. )가 나고 창백한 하얀 피부에 짙은 갈색 머리에 검은 두 눈을 가진 아름다운 아이가 바로 셋째였다. 태어난 당시에는 몰랐으나 태어난 지 석 달이 지나서야 아이가 옹알이도 하지 않고, 조용하며 팔다리를 휘젓지도 않고 조용함을 눈치챘다. 심지어 허공에 매달아 놓은 모빌이나 딸랑이에 관심도 없고 초점도 어느 한군데 머물지 않았다. 이후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눈높이에 앉아 오렌지 하나를 움직여 보았다. 아이는 반응 없이 다른데 보고 있었다. 이 시점을 계기로 이 가족의 삶이 바뀌었다.
  • 이 책은 시점이 세 시점으로 나뉜다. 처음에는 맏이의 시점으로 아이가 태어났을 때 9살의 남자아이였다. 장남으로서 책임감으로 아이를 정성껏 케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동생을 나름 부모님을 도와서 케어를 도맡는다. 동생의 장애에 휘말리느니 먼저 자신이 나서서 뛰어들겠다는 의지였다. 먹여주기도 하고 아이를 관찰하여 울음을 해독해요 복통인지 배고픔인지 불편함인지 알아듣고 기저귀도 갈아주는 등 세심하게 배려한다. 아이는 볼 수도 붙들거나 의지로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었지만 들을 수는 있었다. 그래서 맏이는 다양한 소리를 내보기도 하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다정하게 묘사해 주기도 한다. 맏이의 정성을 알아서일까 아이는 맏이의 소리에 미소 짓기도 하고 옹알이하거나 우는 등 몸을 자라나도 갓난 아이의 반응을 보인다. 그럴수록 맏이는 아이가 쓸 비누나 생리식염수, 먹일 퓌레 재료인 당근을 챙기기도 한다. 이후 아이가 하루 종일 누워지내면서 생기는 욕창을 관리하기 위해 자세도 변경하고, 아몬드 오일로 마사지도 해준다.
  •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가족들은 친척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간다. 아무래도 일반적이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아이를 탁아소에 맡겨두고 부모는 맞벌이를 했던 모양이다. 아이를 담당하던 탁아소에서 더 이상 아이를 맡아 줄 수 없다고 연락이 온다. 가벼운 간질 발작으로 신경성 경련이 왔기 때문이다. 더 나은 시설을 찾기 위해서 관공서로 가족들이 찾아가지만 오히려 맏이의 트라우마가 생긴다. 각종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들이 관공서를 상대로 답답함을 토로하고 싸우러 울분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장애가 지속되고 있다는 걸 증명하라는 관공서의 말에 어느 한 부모는 울분을 터뜨린다. 왜요? 우리 아이의 다리가 설마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세요?라는 말까지 하게 만든다.

맏이는 신분증 갱신을 위한 절차(이는 본인만이 발급이 가능해서)를 제외하고는 평생 누이가 도움을 주게 된다. 맏이는 공증인 사무실이나 법정에 발도 들이지 않으며 자동차나 아파트도 구입하지 않고, 공과금 처리 같은 경우 차라리 연체금을 물지언정 본인이 처리하지 않고 서명도 하지 않는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이는 누이 이외에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외곽의 수녀원에 아이와 같은 중증 장애인들을 케어하는 시설에 보내어지고 이후 맏이에게는 마음 한쪽이 조용히 죽어버렸다. 무리 속에 있어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아이가 안전한지 늘 전전 긍긍하면서 혹여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막상 주말마다 아이를 보러 가면 혹여나 아이를 져 버렸다는 슬픔을 두 눈으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주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 걱정도 아이가 10살이 되고 세상을 떠나자 그 걱정 역시 끝났다. 그렇게 사춘기가 지나고 아이는 30대에 대기업 재무부장이 되고 약혼자도 자녀도 없이 군중 속 그림자 같은 사람으로 있는 듯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간다.

  • 두 번째 시점은 누이 시점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당시 누이는 7살이었다. 헌신적인 맏이와 다르게 남들과 다른 아이가 무서웠다. 좋아하던 오빠의 관심이 아이에게 만으로 쏠리니 심술궂은 성격을 드러내곤 한다. 하지만 어찌 보면 누이의 시점도 이해가 된다. 본인도 아이인데 부모님과 오빠의 관심은 오직 동생에게로만 쏠리니 말이다. 오빠의 관심을 돌려보려고 아이에게 다가가 보지만 서툰 마음에 아이에게 틱틱 거리곤 한다. 목을 가누지 못하는 동생을 들어 올리다가 목이 확 꺾여서 오빠에게 한소리 듣기도 한다. 아이의 모습이 부끄러워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못하는 고충은 아무도 모른다. 분노라는 감정이 뿌리 내어 맏이의 성격을 긁어보기도 하고 미운 마음에 아이에게 화장놀이나 걸리적거리는 인형놀이를 하기도 하는 등 점점 삐딱해지니 분노는 심리 상담소에 누이를 보낸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다. 여기저기 상담소를 옮겨 다니다가 한 상담원의 무례함에 엄마가 위축되고 슬퍼하는 모습에 누이는 화가 나서 너나 상담받아보라며 들이박기도 한다.

그런 누이를 유일하게 위로해 준 사람은 그녀의 할머니였다. 우리가 아는 푸근한 할머니는 아니지만 전쟁 때 저항군으로 활동해서였을까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는 눈썰미가 있는 과묵한 할머니지만 지혜로운 분이었다. 그래서 유독 누이는 할머니를 따랐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었다. 사춘기 시절 반항의 끝에 결국 머리를 삭발하고 나타나는데 유일하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도 할머니였다. (그 와중에 맏이는 눈치를 채지도 못했다는..) 이후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고, 고등학생 때는 교사가 잔소리하자 책상을 뒤집어엎어버려 퇴학을 당하는 등 아슬아슬한 시기를 보내다가 급작스러운 할머니의 죽음과 아이의 죽음으로 아이가 내 남동생임을 인정한다. 아이를 그리워하며.. 결국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등 외국에서 살게 되면서 슬픔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씩씩하게 이겨나간다. 슬픔에 침잠해버린 맏이와 다르게..

  • 마지막 시점은 막내의 시점이다. 막내라고 해서 아픈 아이의 시점인가 했는데 아이가 죽고 나서 태어난 아이의 시점이다. , 이 집안의 늦둥이로 사실상 아이를 만나본 적 없는 유일한 가족 구성원이다. 명확하지는 않는데 아이의 죽음 10년 후의 임신인 걸로 추정이 된다. 엄마의 임신 소식에 축복보다는 긴장하고 모두가 불안해한다. 아이의 탄생과 죽음이 너무나도 큰 상처였기 때문이다. 막내답지 않게 모범적이고 점잖고, 부모를 위로하는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사실 막내의 성장과정은 내내 안도와 한숨과 시린 미소와 함께였다. 혼자 크지는 않았다. 그는 그 사실을 알았다. 죽은 아이의 그림자와 함께 태어남을.. 자다가 자주 잠에 깼는데 그 집안에서는 더 이상 아무도 밤에 제대로 잠드는 사람이 없었다. 꺼진 난로 앞 책을 읽는 아버지나 소파 위에 앉아 멍한 눈길로 물건들을 위로 던지는 엄마를 자다 일어나서 거실로 가면 늘 보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막내는 우연찮게 부모님의 침실 옆 협탁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된다. 연약한 아이와 맏이와 사진 찍는 사람을 빤히 바라보는 누이의 어린 사진을.. 막내는 궁금하다. 가족들의 언뜻언뜻 보이는 모습에 나이가 많은 형과 누이의 자신은 모르는 어린 시절의 모습이..

막내가 커감으로써 누이의 자녀들과 누나와도 서슴없이 다가가고 대화한다. 막내의 진중하지만 특유의 관찰력으로 활동성이 좋고 자연을 좋아하는 누이의 방식인 산책을 함께 함으로써..

어려운 맏이는 암양들을 다르다가 맏이가 차가운 인상과는 다르게 약한 존재에게 마음을 쓰는 본성을 눈치챈다. (임신한 암양의 불편함을 계속 보살펴주고 쓰다듬는 걸 눈치채는 막내.. ) 막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맏이의 손을 슬쩍 잡지만 뿌리치지 않는다. 저녁 먹을 때도 막내가 맏이의 어깨에 슬쩍 자신의 머리를 기댄다. 평상시 사람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 맏이가 막내에게 슬쩍 곁을 내주는 모습에 엄마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누이에게 전송한다.

아버지는 엄마만 들릴만한 목소리로 말한다.

"상처 입은 아이 하나, 반항아 하나, 부적응한 아이 하나, 마법사 하나로군. 이만하면 잘 키웠네"


사실 이 책은 아무 정보와 기대 없이 오디오북으로 듣다가 울컥했던 책이다. 지나친 감정묘사도 없이 관찰자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이야기 덕이다. 되려 담담한 어투라고 해야 할까..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가족 중 아픈 사람으로 인해서 가족들이 어떻게 똘똘 뭉치고, 변했으며 각자 어떻게 아픔을 치유했는지 가족의 일대기를 훔쳐보는 느낌이다. 착한 성격이 아니라서 희생적인 맏이의 시점보다 누이의 시점에 더 공감이 가고 이해가 되었다. 아무래도 나도 동생이 있는 입장에서 누이가 맏이의 사랑과 관심을 뺏긴 느낌을 이해해서가 아닐까 싶다.

존재 자체에 위로가 되는 막내의 성장기는 짠했다. 하루하루 마음 졸였을 부모의 입장이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이가 두발로 걷고 뛰고 움직이는 모습 하나하나 다 사진을 찍고 자주 식탁 위 오렌지가 보이냐고 확인하는 엄마의 모습에서는 그 시린 미소가 너무 아팠다. 아마도 가슴에 묻은 아이가 생각나서였겠지 싶다.

또한, 아이의 죽음 이후 세상에 마음 붙이지 못하고 자신을 고립함으로써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것 같았던 맏이가 막내의 스킨십 공격(?)에 밀어내지 않고 받아주는 모습에 맏이도 사실 위로받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먹먹했다. 애교 많고 살가운 막내가 알고 보면 정 많고 다정다감한 큰형님과 잘 지낼 거 같아서 흐뭇해졌다고 하면 너무 과몰입일까..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 프랑스 문단이 가장 주목하는 작가 클라라 뒤퐁-모노의 소설이 국내 처음 출간되었다. 소설 『사라지지 않는다』는 2021년 프랑스 4대 문학상인 ‘페미나상’ 수상을 비롯하여 다수의 문학상과 주요 프랑스 언론과 문단, 독자들의 열렬한 찬사와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어느 날 어느 가족에게 부적응한 아이가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부적응한’ 아이가 태어남으로 인해 삶이 변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챕터는 ‘부적응한 아이’를 제외한 세 아이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아이의 존재가 맏이와 누이, 막내의 삶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키는지를 담담하지만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아이의 존재는 누군가에게는 기쁨이자 전부였고, 누군가에게는 고립과 분노였다. 삶의 한가운데 그들은 혼자였고 동시에 함께였다.
저자
클라라 뒤퐁-모노
출판
필름(Feelm)
출판일
20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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