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 있는 이별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재능교육이 주관하는 역사 탐방에 갔던 터라 공주와 부여에 갔었다. 당시 부산 노포동에 하차하면서 집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당시 4시간 동안 부모님과 연락이 닿지 않아서 혼자 비 오는 거리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어야 했다. 당시 잘 모르지만 나로 인해서 인솔 교사와 관광버스 기사인 어른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하에 화장실에 숨어들었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던 때라 공중전화에서 하염없이 부모님의 연락처로 전화를 해야 했는데 신호는 가는데 전화연결이 되지 않아 패닉이 오곤 했었다. 정말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버려지는 건가 라는 최악의 생각까지 하곤 했었다. 이후 저녁 8시가 넘어서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발인한 날이라 연락두절이었다는 사실을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얼마나 정신없었는지 지금은 이해가 가지만 어린 마음에 큰 상처였다. 결국 그날 밤 10시가 되어서야 부모님을 만났었고 당시 이미 지쳤던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했다. 더더욱 상처였던 것은 할아버지가 폐암 4기로 시한부였다는 사실을 성인이 되어서 우연찮게 엄마랑 이야기하다가 알게 되었던 것..(한시간만 기다려달라, 두시간만 기다려라 하다가 어느덧 밤 10시가 된것임)

친척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외가랑도 왕래가 없었는데 무녀독남인 아버지의 상황도 이해가 안가는데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진 할아버지의 존재가 놀랍기도 했다. 물론 왕래가 많이 있고 살가웠던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와 함께한 기억도 거의 없는 데다가 아버지나 할아버지나 무뚝뚝한 성향이다 보니 서로가 굉장히 독립적인 성향이다. 마치 나와 아버지처럼.. 아마 길 가다가 마주쳐도 못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왕래가 없다. 뭐 가정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의 최후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그러다 보니 애초에 태어났을 때부터 할머니도 안 계셨고, 외가 쪽도 할아버지는 안 계시고 외할머니는 친손자만 이뻐했으니 조부모님의 정도 못 느꼈고,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이별하는 법을 배울 계기도 없었다. 정말 증발하듯이 싹 사라지고 난 후 나에게 설명조차 없는 것도 어이없는 부분이긴 하다. 웃긴 건 남동생한테는 설명을 다 했는지 다 알고 있었다는 게 분노 포인트이다. 사춘기 때에는 나를 사람취급도 안 하는 건가 하는 생각부터 가족도 아닌 건가 하는 안 좋은 생각까지 했었다. 물론 지금도 공감이 간다거나 이해가 되진 않는다. 그럴 감정을 못 느낄 정도로 꽤 오래 지난 일이라서 이제 와서 들추어내기 싫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쩌면 어리다는 이유로 헤어질 권리마저 박탈된 거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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