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Today is better than yesterday
hello's 24 - 25 일상

25.10.24. 지금까지의 인생중 나를 완전히 무너뜨린 이별은 무엇이었는가?

by hello :-) 2025. 10. 23.
728x90
반응형

 사실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 있는 이별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재능교육이 주관하는 역사 탐방에 갔던 터라 공주와 부여에 갔었다. 당시 부산 노포동에 하차하면서 집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당시 4시간 동안 부모님과 연락이 닿지 않아서 혼자 비 오는 거리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어야 했다. 당시 잘 모르지만 나로 인해서 인솔 교사와 관광버스 기사인 어른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하에 화장실에 숨어들었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던 때라 공중전화에서 하염없이 부모님의 연락처로 전화를 해야 했는데 신호는 가는데 전화연결이 되지 않아 패닉이 오곤 했었다. 정말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버려지는 건가 라는 최악의 생각까지 하곤 했었다. 이후 저녁 8시가 넘어서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발인한 날이라 연락두절이었다는 사실을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얼마나 정신없었는지 지금은 이해가 가지만 어린 마음에 큰 상처였다. 결국 그날 밤 10시가 되어서야 부모님을 만났었고 당시 이미 지쳤던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했다. 더더욱 상처였던 것은 할아버지가 폐암 4기로 시한부였다는 사실을 성인이 되어서 우연찮게 엄마랑 이야기하다가 알게 되었던 것..(한시간만 기다려달라, 두시간만 기다려라 하다가 어느덧 밤 10시가 된것임)

 친척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외가랑도 왕래가 없었는데 무녀독남인 아버지의 상황도 이해가 안가는데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진 할아버지의 존재가 놀랍기도 했다. 물론 왕래가 많이 있고 살가웠던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와 함께한 기억도 거의 없는 데다가 아버지나 할아버지나 무뚝뚝한 성향이다 보니 서로가 굉장히 독립적인 성향이다. 마치 나와 아버지처럼.. 아마 길 가다가 마주쳐도 못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왕래가 없다. 뭐 가정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의 최후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그러다 보니 애초에 태어났을 때부터 할머니도 안 계셨고, 외가 쪽도 할아버지는 안 계시고 외할머니는 친손자만 이뻐했으니 조부모님의 정도 못 느꼈고,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이별하는 법을 배울 계기도 없었다. 정말 증발하듯이 싹 사라지고 난 후 나에게 설명조차 없는 것도 어이없는 부분이긴 하다. 웃긴 건 남동생한테는 설명을 다 했는지 다 알고 있었다는 게 분노 포인트이다. 사춘기 때에는 나를 사람취급도 안 하는 건가 하는 생각부터 가족도 아닌 건가 하는 안 좋은 생각까지 했었다. 물론 지금도 공감이 간다거나 이해가 되진 않는다. 그럴 감정을 못 느낄 정도로 꽤 오래 지난 일이라서 이제 와서 들추어내기 싫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쩌면 어리다는 이유로 헤어질 권리마저 박탈된 거라 여겨진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