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책은 추천받아서 읽게 된 책이다. 추천받은 책 중에서 너무 좋았던 책이고 슬프고 마음 아팠던 책이었다. 아끼는 책 중에 한 권이다. 아마도 이 책은 코로나가 터지기 3개월 전에 마지막으로 yes24 중고서점에서 데리고 온 마지막 책으로 알고 있다.
탄탄 대로를 걷던 서른여섯 살의 신경외과 의사가 급작스레 암 진단을 받고서 투병을 하면서도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는 삶의 의지를 드러낸다. 담담하면서도 차가운 문체 속에 살고자 하는 뜨거운 그의 마음이 느껴져서 중후반부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책이다.
- 매스는 아주 날카로워서 피부를 자른다기보다는 지퍼를 여느 느낌이 든다. 피부가 열리고 그 아래에 숨겨진 금단의 힘줄이 드러나면, 단단한 각오가 무색하게도 불시에 무안함과 흥분을 느끼게 된다.
=> 사실 저자의 아버지 역시 의사였다. 하지만 너무 바쁘고 환자들에게 헌신적인 모습에 저자는 의사가 되길 내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학과 생물과 관심이 많았던 아이였다. 두 관심사에서 고민하다가 접점인 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의학의 역사와 철학을 이수한 후 의학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역시 보통 내기가 아니다.
- 의사는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지려다가 때로는 그 무게를 못 이겨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 레지던트 생활을 하다가 여러 환자를 만난다. 무뇌아를 임신한 임산부에게 아이의 출생 후 얼마 안 가 죽을 것을 알려야 하기도 하고,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총상을 입고 온 아이를 손써보지 못하고 떠나보내기도 한다. 손써보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환자들을 보면서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 내가 외과의사로서 얼마나 오만했었는지 뼈저리고 느꼈다. 최대한 책임감과 권한으로 환자를 돌보려 했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일시적인 책임이고 덧없는 권한이었다.
=> 처음에는 항암치료 대신에 먹는 약을 진단받아서 복용 후 차도가 있었다. 어느 정도 암이 진정세가 보이자 중단했던 레지던트 생활을 복귀해서 진행했으나 지속적인 요통과 허리 통증으로 추적 검사를 하자 종양이 더 자란 것을 알게 된다. 마음이 아프지만 7년간 근무하던 회사에서 그만두면서 치료에 전념하고자 한다. 하지만 다시 자라난 암은 지독하고 악랄했다. 서서히 몸이 죽음에 잠식당하면서 결국 태어난 지 8개월 된 딸과 사랑하는 부인과 부모님을 두고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사실 전반부는 저자의 의사로서의 치열하게 환자들을 돌보면서 자신의 병인 암을 만나면서 시작하지만 너무나 하고 싶었던 신경외과로서의 삶을 살고자 애쓴다. 다 읽고서 한편으로는 이때라도 자신의 건강을 챙겼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사랑하는 아내와 같이 암 진단을 받고서 정자은행을 들려서 본인이 죽고 나서 혼자 남을 아내가 원하는 둘 사이의 아이를 준비하기도 한다.
후반부에서는 의사라서 아는 자신의 치료방법이 어떤 것이고 어떤 부작용을 겪었으며 어떤 상태로 진행 중인지 쉽게 서술하고자 한다. 하지만 급격한 건강 악화로 집필을 채 마무리 짓지 못한다. 미완성의 원고는 아내 루시가 마무리 짓는데 가까이에서 남편의 마지막을 바라봤으나 그 슬픔 너머로 남편이자 신경외과 의사의 못다 쓴 원고를 담담하게 마무리 짓는다.
사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급작스러운 사고이거나,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암을 선고받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오는 데는 순서 지켜서 오는데 갈 때는 순서 없이 가는데 항상 죽음은 나와 멀다고 생각하고 살게 된다. 어쩌다가 죽음에 대한 소재로 이야기를 하면 못 들은걸 들은 것 마냥 불쾌해 하거나 갑자기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곤 한다.
이 책의 저자의 경우 처음 암 진단을 받고서 얼마나 시간이 남았느냐고 묻는다. 물론, 담당간호사는 이야기한다. 정확하게 얼마 남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거 알지 않느냐고.. 저자는 말한다. 2년 남았다면 작가로 살고 싶고, 10년이 남았다고 하면 외과의사로 좀 더 살고 싶다고.. 원래 인생계획은 신경외과 의사로 20년을 살고서 남은 20년은 작가로 사는 게 계획이었다고 한다. 결국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복귀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다가 재발로 암이 더 퍼지면서 퇴직한다.
너무 안타까운 게 이 책이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 되어버렸는데 작가의 꿈대로 되었다면 엄청난 작가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안타까웠다. 암 진단 후 복직을 택하기 이전에 치료에 전념을 하고 몸을 돌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하지만, 이 생각도 제 3자여서 드는 생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 들기도 한다. 반면에 내가 작가의 상황이었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하는 생각도 하게된다.. 아마 어중떠중 심란해 하면서 이도 저도 선택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쉬운 점은 신경외과 의사이자 말기 폐암 환자였던 작가의 깔끔한 문체를 더 이상은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나의 죽음과 나의 죽음 이후 주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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