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집에 대한 환상은 그렇게 큰 편은 아니다. 잦은 이사로 다양한 곳에 살아봤었다.
다세대 주택에 마당 있는 1층에 살아보면서 길고양이가 떡하니 우리 집 거실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기겁한 적도 있고,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3층에 살아서 내가 집에 없을 때 택배를 받을 곳이 마땅찮아서 집 앞 슈퍼에 눈치 봐가며 부탁했던 적도 있고, 복도식 아파트에 살면서 옆옆아파트에서 부부싸움 때문에 밤새 잠들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의 주거지 형태는 아파트가 그나마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분리수거나 경비실이라는 현실적인 대안을 무시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갑갑해 보이고 그래도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 했었는데 말 그대로 철딱서니 없을 때의 이야기였다는 걸 깨달았다. 언젠가 내 집을 마련하게 된다면 투룸인 아파트에서 사는데 제일 큰방은 벽에 책장을 짜서 넣고 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원목 책상을 맞추겠다. 벽지는 깔끔한 화이트로 하되 한쪽벽은 딥그린 색상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 옆 작은 방에는 말그대로 침대만 놓고 암막커튼과 행거만 설치해서 당장 입을 옷들만 걸어놓을 거 같다.
서재이외에 가장 힘을 준 곳은 주방이 아닐까 싶다. 난 먹는 게 너무 좋아서 직업을 요리사로 삼고 있는데 사실 지금의 주방은 나의 주방이 아니다 보니 버리고 싶은 물품들이 많지만 그냥 모른 척하고 있다. 화력도 세지도 않고, 양념통도 부실하기 그지없고 동선도 영 거슬리지만 한번 손대면 진짜 말 그대로 전체를 덜어내야 하는 상황이라 그냥 모른 척하고 있다. 언젠가는 쓰겠지 하고 냉동실에 쌓여 있는 재료들도 한숨 나오는 지경인데 손이 잘 안 가는 언제 넣어놨는지 모를 떡들이랑 과거 얼려놓았을 생선들도 처분하고 과한 엔틱 한 느낌의 손도 댄 적 없는 그릇들을 싹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그와 달리 이가 빠졌지만 아깝다는 이유로 계속 쓰고 있는 밥그릇 국그릇도 정리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나보다 오래된 엄마의 옷들도 언젠가는 내 다 버리고 쓴 기간보다 방치된 기간이 더 긴 고장 난 안마의자도 앉지 않는 푹 꺼진 소파도 내 다 버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때가 되면 거의 짐의 3/4를 내다 버려야 하는데 폐기할 때도 돈이 어마무시하게 들 텐데 미리 돈을 모아놓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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