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고통을 야기하고, 부는 지루함과 권태를 불러일으키며 쾌락을 좇게 만든다. 일요일은 지루하고 나머지 엿새는 고통스러운 이유다.
6년 전에 빚이 900만 원과 통장 잔고에 천 원이 겨우 있을 때에는 정말 열심히 일했었다. 일하고도 지치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책을 읽곤 했었다. 어느새 빚을 모두 갚고 나니 조금은 나태해졌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참았다가 yes24 중고서점에 중고책으로 뜨면 큰 가방을 메고서 중고서점에서 15만 원어치 책을 사 오곤 했었다. (현재 그 책을 새책으로 사면 거의 30만 원어치가 나온다) 지금은 그 중고서점이 없어지기도 했고 근처 중고서점이 사라져서 오히려 환승을 3~4번 해야 하는 상황이라 오히려 가는 게 더 지치는 상황이다. (원래 있던 중고서점도 환승을 두 번 해야 했음)
사실 주로 이용하는 yes24는 인터넷에서 중고책을 검색해서 살 수는 있는데 요즘은 배가 불러서 그런가 그냥 새책으로 사서 보려고 한다. (사실 그마저도 거의 6개월에 한 번 30만 원어치 정도 사려고 함) 빛바랜 종이나 아무렇게나 줄 그어진 것이 예민하진 않지만 이왕이면 새책에 사은품도 있는 게 더 나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중고책을 검색하면 yes24 다른 지점에서 판매하는 경우도 있는데 판매자가 개별로 있는 경우 오히려 배송비가 더 나오기도 한다. 새책은 얼마 이상 사면 무료배송인데 한 번도 그 얼마를 못 넘은 적은 없다. 여하튼.. 나름 살만해지니까 이전만큼 책을 더 열심히 보지 않는 거 같다. SNS에 확 시선이 몰리기도 하고, 괜히 유튜브에 눈길이 뺏기기도 한다. 뺏기는 건 그런데 왜 남 책 읽는 영상에 시선이 뺏기는 건지..ㅎㅎ
요즘은 또 곧 올 2025년 다이어리 구경하느라 바쁘다. 정말 소름 돋게도 아직도 날이 더워서 냉장고 바지와 냉장고 티셔츠, 쿨토시를 입으면서 다이어리 구경을 한다는 게 놀라운데 아마 내년보다 올해가 훨씬 시원하겠지.. 추석이 지났는데 아직도 선풍기 끌어안고 사는 거 나뿐인가...(집에 에어컨 없음) 쾌락에 이미 져버린 거 같아 씁쓸하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반성을 하면 내일의 나는 좀 책을 읽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렇게 넋두리를 해본다.
처음에 빚을 모두 갚고 나서는 살짝 가벼운 우울감이 왔었다. 어찌 보면 큰 빚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해고되어서 주머니에 딱 천 원 있는 상황에서는 큰돈이고 그나마 다행인 건 정부에 도움 받았던 햇살론이었다는 거지만.. 혹시나 이자와 원금을 못 갚으면 어쩌나 하는 그 마음에 12월 31일에 해고되고 1/4일에 전입신고 하면서 미친 듯이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고 면접 봐서 1월 6일에 일시작했던 그 순간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처음에는 월급 모두를 빚 갚는데 모두 썼는데 이러다가 현타가 올 거 같아 적금풍차 돌리기를 하면서 차차 소비습관도 바로잡고 얼마나 내가 적은 월급으로 대책 없이 살았는지 알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40만 원 받고 수습기간하느라 빚이 생긴 거였음) 어디 흐리멍덩하게 소비한 것도 아니고 어디 사기당한 것도 아닌데 말 그대로 월급이 작아서 빚이 생겼다는 게 지금생각해도 현실자각타임이 온다. 그때는 집 근처에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왔다 갔다 교통비랑 월세까지 포함하면.. 그만 알아보자.. 다 갚고 나니 마이너스였던 잔고에서 0이 되면서 이제야 남들과 똑같은 출발선상에 서게 되었다는 것에서 무기력감을 느꼈었나 보다. 그래도 나한테는 큰 금액이지만 9천만 원이 아니라 9백만 원이라 다행이라며 경험한 거라고 생각하고 6년간 달려온 거 생각하면 다행이다 싶다. 가끔 책이나 노트로 지름신이 오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남는 거니까.. 다시 책을 읽으면서 N번째 오는 나의 독서권태기를 잘 달래 봐야겠다. 이러다가 또 재미있는 책 만나면 또 화르륵 불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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