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총량은 개인의 본성에 의해 정해져 있다. 고통의 종류가 수만 가지여도 결코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통과 행복은 외부의 환경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향과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 성향은 나이가 들거나 건강상태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있을지 몰라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 잦은 이사로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못했을 때에는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집이 못살거나 한건 아닌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집을 키우고 싶었던 부모님의 뜻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 부족하지 않은 살림이었는데 같은 지역구에 이사를 네 번이나 다녔었다. 초등학교만 세 번이 바뀌었으니.. 입학한 학교, 다닌 학교, 졸업앨범 촬영한 학교 모두 다 달랐으니.. 정 붙이기도 쉽지 않았고. 특히 초등학교 졸업하기 3주 전에 전학 간 건 최악이었다. 덕분에(?) 중학교도 하필 근처로 가는 바람에 3년 내내 홀로 다녔었다. 죄다 다들 이미 무리 지어서 친구 먹었는데 굳이 내가 굽혀서 끼어달라고 하기도 자존심 상했었다. 지금은 그나마 세상풍파를 겪으면서 조금은 둥글어진 성격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시비 걸면 왜 저래하고 냉소적으로 대하다 보니 일명 싹수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뭐 싸가지 있는 편도 아니었으니 틀린 소문은 아닌 셈.. (요즘말로 흔히 T같이 아주 효율적인 성향이 어릴 때 더 강했다고 보면 됨)
어릴때에는 투명인간 취급받거나 은근히 따돌림을 받는 게 너무 괴로웠다. 그래도 덕분에 나는 나랑 가장 친해질 수 있었다. 혼자서 조조영화도 보러 가고, 혼자서 도서관도 다니고 혼자서 시내까지 가서 용돈 털어서 책도 사 오기도 하고 덕분에 지금도 시간과 체력만 된다면 집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당일치기로 콘서트를 보러 갔다가 혼자 뽈뽈거리며 광화문 구경도 하며 잘 돌아다닌다. 코로나 직전에는 대구에 문구구경하러 당일로 KTX를 타고 오가기도 했었다. 혼자 숙박을 하기에는 겁쟁이라서 무박 며칠로 싸돌아다니긴 잘하는 거 같다. 덕분에 대학을 입학할 때에는 전공을 뭘 할지 방황을 하기는 했지만 정작 대학 졸업을 하고 뭘 할지 방황 없이 바로 일을 구하고 여태 쭉 일하고 있다. 일하면서 "아.. 진짜 저 사람 왜 저래?" 혹은 "와 일이 줄어들지를 않네.."라는 생각은 한 적이 있어도 "이 일이 내 일이 맞을까?" 혹은 "사는 게 힘들다.."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30대에는 난 죽고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열다섯열여섯.. 정작 30대가 되면서는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하는 불안이 잠시 생기긴 했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책을 만나면서 좌충우돌 답을 찾아가고 있는 거 같다. 남들은 20대 30대 때 이 길이 내 길인가 불안해한다고 하는데 난 그 고민을 10대 때 했었던 거 같다. 이대로 서른 즈음까지 살까 봐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을 했었다. 사실 죽을 용기도 없었지만..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지금은 그래도 그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고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이 컸었는데 평생의 고통을 그때 몰아서 다 겪어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예전에 좋아했던 드라마의 대사중 강한 놈이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아남은 놈이 강하다는 대사를 좋아한다. 상처투성이,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내가 강해지는 과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종교가 없지만 신이든 뭐든 내가 견뎌낼 수 있는 고통만 준다는데 감당이 안되면 고통 따위도 지가 알아서 피해 가겠지.. 뭐 달려들면 난 겁쟁이니까 도망은 못 가고 그까짓 거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미래의 내가 알아서 버텨내겠지 하고 생각한다. 어쩌겠어.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프고 답이 안 나오는걸..
'hello's 24 - 25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09.16. 매일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 (16) | 2024.09.16 |
---|---|
24.09.15. 행복과 불행의 차이. (23) | 2024.09.15 |
24.09.13. 매일 생기는 문제와 씨름하는 게 삶의 본질이다. (23) | 2024.09.13 |
24.09.12. 행복에 집착하지 마라. (23) | 2024.09.12 |
24.09.11.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20) | 2024.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