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념은 만연하고 사악하다. 내가 많은 일을 적당히 타협하게 만든 신념이기도 하다. 바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안락함이라는 믿음이다. 이런 믿음을 가질때 우리는 삶에서 이루고자 했던 위대한 목적도 저버리고 고통이나 어려움은 어떻게든 회피한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투쟁이며, 일시적인 휴식과 축복은 그 투쟁속에서 더욱 아름답다. 때때로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고 안락함만을 갈망하는 게으름을 극복해야 한다. 창읮거 작업은 무관심의 교두보를 공격하는 과정이고 아락함에 굴복하면 희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위대함을 포기하게 된다. 안락함은 위대함의 적이다.
안락함을 당신의 규범으로 세우고 나면 편안해지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것이다. 창의적 이유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을 얻을 것이고 심지어 편안함을 위해 삶의 위대한 의미와 사명까지 희생시킬 것이다. 안락함에 대한 사랑은 위대함의 적이다. 당신의 삶이나 직장에서 창의성과 좋은 결과보다 편안함을 더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 있는가?
안락함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든 절대적인 것이 없다. 특히 세상에 좋고 싫고가 분명한 것이 과연 몇이나 될까. 창의적인 일을 할때에는 안락하고 익숙한 것을 추구하면 안되겠지만 같은 일을 반복하는 나의 경우에는 오히려 안정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난 식당에서 근무하는데 어제와 오늘 김치볶음밥이 맛이 다르면 그게 더 문제가 아닐까.. 대신에 김치볶음밥을 볶는 부분에는 좀더 맛있고 더 빨리 할 수 있는 창의성을 추구해야 매너리즘에 빠져서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한 마을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레시피가 있다. 소세지 전골 요리를 하는데 양 끝을 6cm이상 크게 잘라서 버리는 것이 할머니, 엄마, 딸에게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비법이었다. 의아함을 느꼈던 작가는 왜 이런 레시피가 대대로 이어졌는가를 추적하다보니 고조 할머니가 전골요리를 하는데 집에 작은 냄비 밖에 없어 안들어가서 잘랐던 것이었다. 왜 그랬는지 알았더라면 소시지를 그렇게 많이 오랫동안 버리지 않고 맛있게 배불리 먹었을텐데 말이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안락함을 벗어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렸을적 왜인지 모르겠으나 막연하게 나에게는 서른이 안오고 마흔이 뭐야.. 그전에 난 이 세상에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그래서 되는대로 살았었다. 뭔가 끝까지 열심히 해본 기억이 없다. 그러다보니 용두사미보다 더한 용두무미라고 나를 보고 답답해 했었다. '쟤는 진짜 지 밥벌이는 하고 살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학교 공부에 매몰된게 아니라 내 나름대로 나의 길을 찾는 시행착오라고 박박 우겨보지만 그저 시간을 허비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늘 집에서 혼자 책을 보던가 영화를 다운받아 보거나 하곤 했었다. 그때 좀더 알차게 시간을 보냈더라면 좀 야무지게 보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렇다고 지금 그렇게 창의적인 일상을 보내는것도 아니다. 안정적인 일상에서 퇴근후 갖는 내 시간에서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는다던가 새로운 노래를 듣는다던가, 새로운 길로 산책하는게 고작이다. 은근히 정해진 시간에 뭔가를 해야 하는 쳇바퀴가 적성에 맞았다니.. 이런 내가 학창시절에는 왜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면 흥미가 없었는지.. 아 억지로 해야 하는 공부니까 공부빼고 다 재미있었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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