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용기는 더 좋은 미래가 가능하다고 믿고 자신이 그것을 실현할 능력이 있다고 믿을 때 생긴다. 최고의 작품이 탄생하는 지점은 낙관주의와 주체의식의 교차점이다. 낙관주의가 없으면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고, 자신이 가진 최고로 탁월한 아이디어조차 얼마나 귀중한지 깨닫지 못한다. 주체의식 없이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데 필요한 노력을 절대 쏟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낙관주의와 주체의식의 교차점에서 일할때 당신은 강력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당신의 소서는 좌절과 무의미 대신 소망과 가능성으로 채워진다. 낙관주의가 부족할때 나타나는 냉소주의는 창조적 과정을 좀먹는다. 두 가지 강력한 힘의 교차점에 굳건히 서서 일할 때, 가장 훌륭하고 용감한 작품이 나타날 것이다. 이 순간 당신에게 낙관주의나 주체 의식이 부족한 부분은 어디인가? 어떻게 그것을 치료할 수 있을까?
가끔 지금 이대로 모습으로 10년후, 혹은 20년 후 똑같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지금 이 순간이 나쁘진 않지만 남들 저 멀리 걸어갈 때 나 혼자 덩그러니 같은 자리일까 봐 조바심이 날 때가 있다. 괜히 시니컬해지기도 한다. 오늘 내가 책 한 줄 본다고 뭐 얼마나 달라지겠어?, 오늘 운동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는 등.. 지금은 나아졌지만 과거 불과 6개월, 1년 전만 해도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아마 그때 주식에서 손해를 엄청 보기도 하고, 너무 쳇바퀴처럼 산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었다. 게다가 평상시 집 회사 집 회사를 무한반복 하는 데다가 너무 멀리 내다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지쳤었다.
그때 내가 치료한 것은 맛있는거 먹기도 하고, 내가 안 해볼 것 같은 것들을 시도하곤 했었다. 괜히 동네 한 바퀴 걸어본다던가, 잘 안 먹는 도넛을 먹는다거나.. 난 먹기 위해서 사는 편인데 엄마는 그냥 하나 꽂히면 몇 달이고 그것만 먹는 게 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더 힘들어했던 게 아닐까.. (그때 일주일에 네 번은 피자를 먹어서 내가 이태리 사람이 된 줄 알았다.) 퇴근 후 반찬하고 밥 하는 걸 지쳐했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오일장에서 반찬 쇼핑해서 엄청 사다 놓고 반찬 꺼내먹기를 하고 있다. 밑반찬 없이 몇 년간 살았더니 너무 지쳤었는데 사다 먹더라도 진미채라던가 콩자반을 먹으면서 집밥이다고 생각하고 먹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한 끼를 엄청 챙겨 먹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꾸준히 내가 뭔가를 한다는 결과물을 내가 확인한다는 사실 자체가 헛짓거리를 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 되는거 같아서 '이걸 해봐야 뭐 하니..' 라던 내가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퇴근해서 드러누워서 멍청하게 TV만 보거나 책 읽어야 하는데 하면서 SNS 들락거리다가 그런 나의 행동에 내가 실망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는데 이게 쌓여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하고, 매일 몇 그람이 늘어도 이건 많이 먹어서가 아니다(맞음) 근육이 늘었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여유가 생겼다. 그러면서 씻고 나오면 몸무게가 줄어든다고 농담도 한다. 이전에는 나의 몸무게를 외면하느라 철저하게 체중계를 피해 다녔었는데.. 며칠 미루긴 하더라도 일기를 쓰고 나에게 응원을 하기도 하고 철저하게 숫자로 확인하기도 하는 등 눈에 보이는 피드백이 있어야(역시 숫자가 답인가..) 치료가 된다. 소소한 재미를 스스로가 찾으려고 하다 보면 찾아진다. 남들이 보면 정말 재미없게 산다고 하는데 난 진짜 재미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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