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묘한 재주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물건을 잘 줍는다. 가끔 물건이 아닌 것도 주울 뻔했지만.. (예를 들어 유기견이나 유기 묘각 가까이에 오면 줄행랑치느라 바쁜 사람 그거 나예요..)
하여튼.. 주웠던 물건들은 거의 다 돌려주긴 했었는데 돌려주고 주인에게 좋은 소리를 들은 적이 거의 없었다. 네가 가져간 거 아니냐는 소리부터 오늘처럼 답장 너(답은 정해져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의 뉘앙스인 경우는 정말 답이 없다.
금요일에 근무하다가 테이블 위에서 별다방 카드지갑을 습득했었다. 카드 주인의 얼굴이 누군지 대충 가늠이 갔었다. (실제로 확인해 보니 맞았다.) 바로 비싼 메뉴 포장을 주문했던 젊은 여자분이었다. (비싼 메뉴여서 기억한 거는 아니고 친절하셨음)
일단 취득한 카드지갑은 잘 보이는 매장용 전화기 앞에 뒀다. 혹시 찾으러 올 수 있으니까..
일요일에 전화가 왔다. 카드지갑의 주인 되는 사람인데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서 오늘은 무리이고 다음날에 찾으러 가겠다는 통화였다. 언제든 상관은 없는데 잊지 말고 꼭 찾으러 오세요라고 통화를 마무리했었다.
그러고 나서 월요일인 오늘 재료 손질을 하다가 한 중년 남성이 와서는 카드지갑을 찾으러 왔다고 해서 좀 의아해서 어떻게 생겼냐고 물었다. 반복해서 카드지갑이라고만 이야기했다. 저희 쪽에 두고 간 게 맞느냐고 하니까 성질을 내길래 일단 보여주고 맞는지를 확인해야 하나 싶었는데 카드지갑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서 사장님께 전화했더니 취득한 카드지갑 주인은 어제 찾아갔단다.
통화를 종료하고 나서 중년 남성분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데 짜증을 내길래 정색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종종 저희가 카드지갑을 습득하는 경우는 있는데 잃어버렸다는 물건의 생김새가 어떻게 되나요?"
라고 이야기했더니 막무가내로 카드지갑이라고 하지 않느냐고 해서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말해줄 거 아니냐고 취득했던 카드지갑은 어제 다른 사람이 찾아갔다고 하니까 자기 거 아니냐고 생떼를 쓰길래 님 거 어떻게 생겼느냐고 지금 여덟 번째 묻는다고 하니까 그제야 갈색이라고 한다. 아우야... 참 알아내기도 힘들다.
취득했던 건 딥 그린이고 갈색은 취득한 적이 없다고 하니까 그럴 리가 없단다. 차분하게 느린 어조로 다시 반복했다.
취득을 했으면 이건가요 하고 보여드리지 가지고 있어봐야 남의 터인데 뭐 하러 그러겠느냐고 우리 매장에서 분실한 거는 분명하냐고 이야기했다. 답답하고 억울한 건 이해가 가지만 마치 있는데 안 주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답장 너의 자세에서 사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사실 본인 잘못으로 분실해놓고 있는 거 안다 내놓아라는 태도에서 살짝 기분이 상할뻔했지만
두 시간 후 어제 찾아갔던 카드지갑 주인분이 오셔서 내가 먼저 아는체했다. 어제 찾아가셨다면서요??라고 하니까 굉장히 화들짝 놀라시면서 어떻게 알아보느냐고 신기해하셨다. 내가 농담으로 얼굴하고 뭐 시키셨는지 메뉴도 기억을 하는데 가져다줄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었다고 하니까 챙겨줘서 고맙다고 했었다. 오늘은 현금으로 결제하시네요.. 라고 소소한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사실 뭔가 바라고 찾아준 건 아니지만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모처럼 뿌듯한 하루였다.
'hello's 22 - 23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04.19. 경찰서(feat. 잡혀간거 아님주의) (34) | 2023.04.19 |
---|---|
23.04.18. 이구동성이었어요.. 손님.. (45) | 2023.04.18 |
23.04.16. 아홉번째 이야기(feat. 끝낼수 없는) (16) | 2023.04.16 |
23.04.16. 뜻하지 않은 득템 (40) | 2023.04.16 |
23.04.15. 기분이가 좋고 싶을때는? (42) | 2023.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