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개성 강한 가로수를 만났다.
출퇴근이 걸어서는 12분 거리 뛰어서는 9분 거리다 보니까 풍경이 고만고만하다. 하지만 가끔 풍경이 훅 들어올 때가 있는데 봄 가을에 눈이 즐겁다.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십여 년이 지났는데 이사 오고 나서 따로 꽃놀이나 낙엽을 보러 따로 어디로 나들이를 간 적이 없다. 동네에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는 데다가 바닷가 근처다 보니 해풍을 막을 목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독 동네에 나무가 많다.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 엄마와 가끔 휴무날에 근처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초밥 도시락을 사서 차에서 도시락 까먹으면서 동네 세바퀴를 드라이브하거나, 김밥 한 줄 손에 쥔 채로 걸어서 동네 두 바퀴 돌아도 눈이 호강한다.
하지만.. 그 꽃을 오늘 퇴근하는 길에 볼 줄이야.. 사실 사진 찍은 나무가 굉장히 신기한 나무이다.
왜냐면 이 나무는 유독 동네에서 가장 성격 급하기로 유명하기 대문이다.
사실 저 나무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늘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라는 거..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4년 전에도 5년 전에도 늘 이나무가 먼저 꽃을 피웠었다.
사진 속 바로 뒤에 나무를 보면 (사진 속에는 잘 안 보이는데) 뒤 나무에는 꽃봉오리도 안 맺혀있다.
이 녀석이 가을에 단풍이 들 때에도 가장 먼저 져서 알록달록을 자랑하는 점이 신기하다. 그래서 그런가 동네 나무(?)이지만 우리 동네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나무이기도 하다. (내가 사진 찍을 때도 두 명의 아주머니께서 사진 찍고 계셨다.)
옆의 나무는 또 신기한 게 늦게 꽃을 피운다. 바로 옆인데도 신기하리만큼 늦게 핀다. 사진 속의 나무가 잎이 날 때까지도 꽃을 피운다는 거... 마치 늦게 꽃이 피었으니 오래 꽃을 피우겠다는 것처럼..
성격이 급한 나무와 느긋한 이 나무들을 볼 때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사람은 저마다 인생에서 꽃피우는 시기가 다 다르고 자기만의 꽃이 핀다고들 한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던 게 20대 초반인데.. 그때는 이야기를 듣고 그저 대기만성형의 사람들을 위한 위로라고 생각했었는데 처음 이 두 나무를 보면서 그래 나는 좀 늦게 피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한다. 올해도 성격 급한 나무는 잊지도 않고 나에게 또 기억하라고 일찍 꽃을 피웠다. 올해 필 또 다른 구역의 꽃들은 또 어떤 꽃들을 피워서 나를 황홀하게 해줄지 기대되기도 한다. 그때까지 개성 강한 저 가로수도 오래 꽃을 피우고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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