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뱅이인 인간은 고요를 원하지만, 끊임없이 나아갈 수밖에 없다. 나아가라고 강요하는 힘이 멈추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태양 속에 몸을 던지고 싶지만, 궤도를 수정할 수 없는 별과 같은 처지인 셈이다.
한때 나는 우주최강 제일가는 게으름뱅이였다. 이 말인즉 지금은 게으르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과거에 비해서 덜해졌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독한 사람은 퇴근하자마자 씻는 사람이고, 밥 먹자마자 설거지하는 사람이며, 담배를 한 번에 끊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일단 난 비흡연자이니까 마지막은 패스하고.. 학창 시절에는 학교 다녀오면 진짜 하루종일 아니 다음날 학교 갈 때까지 누워서 생활을 했었다. 심지어 열몇 시간씩 자기도 하고 정말 무기력하게 주말을 통으로 날리기도 했었다. 오죽하면 엄마가 나에게 용돈을 쥐어주면서 나가서 좀 놀다 오라고 할 정도로 거슬리는 척추가 없는 생명처럼 지냈었다. 해야 할 일을 최대한 미루고 미루었다가 데드라인에 가까워지면 반짝 집중력이 진짜인 줄 알고 발등에 불 떨어지는 사람처럼 살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평상시에 조금씩 조금씩 공부를 하면 될 거를 왜 시험 앞두고 삼일씩 잠 안 자고 벼락치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이 버릇을 고치게 된건 대학생활을 하면서였다. 시험범위가 책 한 권으로 어마어마하게 넓어지면서 아무리 일주일을 노숙해도 한 권의 책을 벼락치기할 노릇이 없었다. 삼일에 걸쳐서 챕터별로 요약을 하고 A4용지 두장에 요약하고 마지막은 한 장에 요약해서는 달달 외워서 백지 시험지에 줄줄 쓸 지경까지 이르러서야 조금씩 꾸준히 하는 힘을 겪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당장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미루었던 그 일이 다른 일을 만들어서 한번 할 일을 두세 번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제야 내가 원하는 고요는 그냥 고요해 보일 뿐이지 치열하게 움직여야 함을 알게 되었다. 마치 우아한 백조는 상체는 우아한데 하체는 미친 듯이 발로 물을 저어가는 것처럼.. 이제는 안다. 평범하게 하루 일상을 지내기 위해서는 감안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그래서 우주최강 제일가는 게으름뱅이는 퇴근 후 가방을 벗자마자 씻으면서 머리까지 감고 씻은 김에 주방에 들어가서 밥을 하고 먹은 김에 설거지까지 하고 나서야 내 개인시간을 갖는다. 그러다 보면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뿌듯함에 기뻐하게 된다. 그렇게 종종거리면서 집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잠들 때까지 앉아서 생활을 하게 된다. 좀 젊어서 척추가 있는 생활을 했더라면 척추 측만증이 없었을까 잠깐 생각을 해본다.
생각해보면 게을렀다기보다는 내향인인 내가 기가 빨려서 충전하고자 뻗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글을 쓰면서 해본다. 마치 15% 남은 핸드폰에 충전하라고 알람이 뜨듯이 말이다. 당시에는 해야 하는데 나는 왜 이리 게으를까 자책하곤 했었는데.. 아님 게으름 총량이 정해져 있는데 그때 나의 게으름양을 다 쓴 게 아닐까.. 그래서 난 이렇게 열심히 주 6일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그래도 젊어서 게을러서 참말로 다행이다. 뭐 지금도 젊긴 한데.. 역시 사람은 발등에 불 떨어져야 탭댄스를 추든 불을 끄든 뭐든 하는 존재는 맞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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