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죽음은 질투를 가라앉히지만, 나이 듦은 미워하는 마음의 절반을 잠재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래 혹은 미래로 돌아갈래 하면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을 한번 받았던 적이 있었다. 정말 극 현실주의자 답게 대답했다. 타임머신이 있을리가 없잖아 라고.. 무드없다고 잔소리를 고막에 피날때까지 들었지만.. 사실 난 과거로도 미래로도 가고 싶지가 않다. 나의 10대는 너무 힘들었다. 교우관계가 좋지 못해서 내가 꿈이 없어서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해서 너무 외로웠다. 오죽하면 주말마다 집근처 혹은 학교 근처 도서관으로 일찍이 피난왔었다. 분명 찬란한 순간이었겠지만 기억속에 남아있는 장면이 몇 없다. 방어적으로 기억을 지웠나 싶을정도로.. 딱히 추억이라는 것이 없다. 기억이 나야 추억이지.. 그나마 스무살이 지나고는 배우나 가수 덕질을 하느라 띄엄띄엄 기억이 나기는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그래서 왕년에는 이랬었다 혹은 예전에는 이랬었다 하는 좋은 기억보다는 나의 힘들었던 기억을 반추하면서 지금이 그때에 비해서 얼마나 마음편하고 살만한지 비교하게 된다. 그당시때에는 널뛰던 내 마음이 앞도 안보이던 내 마음이 지금은 그런가보다 한다. 싱숭생숭하여 마음이 심란할때에는 한시간 정도 걷는 나만의 루틴이 생겼고, 살살 긁는 손님의 말투에는 웃으면서 달래는 여유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힘듦이 없는건 아니지만..
삼십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면서 어느새 내 머리위에도 이젠 어느정도 티가 날 정도로 하얀 머리가 듬성 듬성 생겼다. 특이하게도 왼쪽 이마 모서리부터 브릿지 염색을 한것마냥 흰머리가 생기는데 괜히 멋스러워 보여서 아직 단한번도 새치염색을 해본적이 없다. 하긴 머리를 노란 고무줄로 뎅강 묶고 늘 조리모를 쓰다보니 굳이 염색이나 파마 등 머리카락에 돈쓰는 것도 아까워서 주방가위로 대충 머리를 자르는 나에게는 새치염색도 귀찮다. 좌우 길이가 안맞는 셀프커트지만 묶으면 티도 안나기에 방치해두고 있으니 별 그렇게 티가 나진 않는다. 머리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샴푸로만 감아도 머릿결은 엄청 좋다. 흰머리도 자세히 안보면 아직까지는 티가 안나는지 자꾸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학생이라며 나를 포교 하려고 하는데 그냥 씨익 웃고만다. 이런 늙은 학생이 어디있다고..ㅎㅎ
어느 책에서 나이듦은 늙어간다기 보다는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중이다 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나이들면서 체력이 떨어지고 생산성이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내가 나에 대해 더 알게되었고, 좀 더 어떻게 죽을지 생각해본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사람일이라는게 어떻게 될지 모르기때문에 혹시나 생사를 오가게 된다면 생명 연장은 안하고 싶다거나, 마지막 나의 모습은 어떠했으면 좋을까 하는 마음에 괜히 나의 짐들을 서서히 줄여나가고 있다. 물론 개미 콧구멍만큼 밖에 비워내지 못했지만.. 막연하게나마 너무 욕심부리지 않고 나이 듦에 너무 속상해하지 않고 서서히 내 마지막을 받아들일수 있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물론 사는 동안에는 하고 싶은것, 먹고 싶은것, 만나고 싶은 사람 원없이 만나고 좋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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