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절망과 근심의 태반은 남의 말을 과하게 의식한 데서 비롯된다. 쉽게 상처받고, 병적으로 예민해지는 자존심의 바탕에는 허영심과 허세가, 과시의 밑바닥에는 타인을 의식하는 태도가 깔려 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쓸데없는 소비는 10분의 1로 줄어들지 모른다. 자존심과 명예욕도 종류는 다르겠지만 타인을 의식하기 때문에 생긴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림으로써 우리는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가?
나의 소비는 지적 허영에 맞춰져 있다. 아직 오지도 않은 2025년의 다이어리가 벌써 다섯 개인걸 보면.. 이미... 고질병이 다시 생긴 것 같다. 우스갯소리로 끝자리가 5라서 다섯 개라는 자조적인 개그를 하고 있음은 너무 어이없어서라고 생각하련다. 처음에는 '아. 나는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구나.'라는 착각에 빠졌었다. 이제는 안다. 누군가가 정갈하게 남겨놓은 이쁜 글씨체가 가득한 노트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직 단련이 되진 않았지만 나의 수첩에 내 생각을 적는 것에 조금은 머뭇거림이 남아 있다. 왜 진솔하게 내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걸까.. 어릴 적 일기장에 남겨놓은 타인에 대한 욕이나 엄마에 대한 서러움등을 공개적으로 모욕당하고 놀림을 당하고 난 뒤졌던 게 아닐까 싶다.
나의 소비는 지적 허영에 맞춰져 있다. 노트나 다이어리 다음으로 가장 많은 욕심을 내는 것은 볼펜과 책들.. 그나마 다행인게 만년필은 내 취향이 아니어서 큰돈이 들진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볼펜도 비싼 건 엄청 비싸다. 그래도 수십만 원 하는 만년필보다는 덜하다는 거지.. 게으름이 베이스로 있다 보니(아직 없어지진 않았나 봄.. 나름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는데...ㅎ) 필기구를 세척하고 잉크를 담는 그 행위를 할 정도로 애정이 깊진 않나 보다. 극 효율을 추구하다 보니 그나마 만년필 대비 저렴한 볼펜에 대량으로 구매한다. (결론적으로 값은 비슷한 거 같기도..) 어릴 때 부모님이 전집은 사줬으면서 유독 어른 책은 사주지 않아서 중학생 때부터 내 용돈에서 일정금액을 책 사는데 쓰곤 했었다. 대부분 역사책이긴 했지만.. 그러다 보니 요즘은 월급 타면 아예 두세 달에 한 번씩 뭉텅이로 책을 사게 된다. 나도 모르게 한이 맺혔었나... 지금은 물려버려서 그러지 않는데 한때는 편의점에서 젤리를 2만 원어치 사서 종일 질겅질겅 씹기도 했었다. 흔히 말하는 돈지랄을 하고 싶었다. 다행인 게 저렴한 젤리나 소소한 스티커 천 원 안팎의 볼펜들이었다는 게 참 나의 주제를 잘 알았던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생각하면 저렴한 노트 몇 권 살바에야 돈 모아서 내 스타일이었던 몰스킨 노트를 사거나, 좀 있어 보이는 볼펜이나 만년필을 사보지 그랬나 싶긴 하다. 늘 가성비를 추구하는 취향이라니.. 이제는 안다. 그 가성비가 내 취향임을.. 뭐 어때.. 난 10만 원짜리 만년필보다 2천 원짜리 볼펜이 더 손이 가는 걸..ㅎ (그래도 지적 허영심 가득한 책은 포기 못하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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