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격렬하게 눈치게임을 하곤 한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굳이 나서서 나의 능력을 어필할 필요를 없음을 간혹 느꼈었다. 특히.. 사진관에 근무했을 때.. 괜히 어느 정도 할 줄 안다고 어필했다가 포토샵 업무까지 떠맡아서 일은 더하는데 월급은 오르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겪고 나서는 웬만해서는 눈치를 보면서 눈치껏 적당히 드러내는 편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그 예외는 바로 도로위!!
운전면허를 취득한지 무려 17년이 되었으나.. 묵은지 보다 더 묵은 장롱면허이다. 사실 운전을 하고 싶어서 면허를 딴 건 맞지만 가족에게 운전연수를 받다가 화나서 두 번 다시는 운전 안 한다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초보가 능숙하게 운전하면 연수를 받겠느냐고.. 굳이 태풍 오는 날 연수해 주겠다고 데리고 나간 분덕에 다시는 운전을 안 하고 있다. 100% 자율주행 기술이 나오면 운전하겠다고 배 째하고 있다.
그럼 언제 눈치 게임하느냐고? 바로 길건널때.. 내가 사는 동네는 특이하게 회전 교차로가 많다. 언뜻 생각나는 회전교차로만 네 군데가 넘는데 그래서 그런가 횡단보도는 있는데 신호등이 잘 없다. 있어도 주황색이 깜빡거리는 용도이지 흔히 있는 파란불 빨간불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눈치껏 저차가 이리로 오나 저리로 오나 요리조리 둘러보면서 길을 건넌다. 그런데 이건 운전자도 마찬가지로 저 보행자가 이리로 건너나 저리로 건너나 유심히 보고 운전한다.
요거는 엄마가 운전할때 조수석에 앉아서 본 결과로 눈치껏 보고 있다가 학생이 건널 거 같은 시그널(?)을 주면 멈춰서 기다려주기도 하고, 건너라고 수신호를 보내주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핸드폰을 보고 너희적 거리거나 뭉그적 거리면 답답하다.
코로나가 시작되고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서 덜하긴 한데 가장 큰 눈치게임은 버스타기가 아닐까 싶다.
동네에 시내버스도 있지만 마을버스도 다니다보니까 버스정거장에서 내가 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내가 타는 버스가 아니면 나는 그 버스를 타지 않는다고 온몸으로 격렬하게 눈치를 준다. 나 때문에 서서 문을 여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의사소통 실패로 멈춰서 문을 열었는데 버스정거장에 나밖에 없으면 왜 그렇게 미안하고 죄송한지 모르겠다.
한국사람이 유독 눈치가 있어서 일하는데 어느정도의 센스가 있다고 한다. 장점이라면 장점인데 단점은 그만큼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나는 어느 정도의 눈치가 있어야 서로 배려도 하고 그 배려가 당연하지 않음을 아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길을 건너거나 하는 경우 내 눈에 보이는 차들이 모두 지나가고나서 건너려고 한다. 퇴근길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운전하는 분들이 최대한 조심해서 운전하는 것을 아는 데다가 어디서 누가 보더라도 모범적인 어른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나 할까.. 무턱대고 후다다닥 뛰어가는 게 아니라 멈춰서 서 있거나 멍 때리거나 하면 네대 중에 두대의 자동차 운전자분이 건너라고 수신호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럼 작지만 꼭 고개 꾸벅으로 감사함을 표시한다. 서로 배려하는 모습으로 10년간 사는 동네에 신호등이 추가 설치 되지 않은 비결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아파트별로 나가는 출입구에는 신호등이 생겼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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